허술한 글재주나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빽빽한 사실들을 마술같이 조합하고 풀어내어 멋진 소설적 분위기를 내는 전기 <트뤼포: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에 이런 기술이 있다. “1959년 4월27일 프랑수아 트뤼포와 장 피에르 레오는 칸의 <400번의 구타> 공식 야간 시사회를 위해 파리에서 턱시도를 빌렸다.”영국의 영화 전문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5월호에서 바로 이 프랑수아 트뤼포의 턱시도를 기념하는 특집기사를 냈다. <400번의 구타>는 이른바 누벨바그의 신호탄이며 지금 그 누벨바그가 쉰살 생일을 맞았다.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당신에게 누벨바그란 어떤 의미냐며 전세계 다섯명의 유명 감독- 자크 오디아르, 카트린 브레야, 찰스 버넷, 클로드 샤브롤, 허우샤오시엔- 에게 질문을 했는데, 허우샤오시엔이 재미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다. 나는 그것을 <펑꾸이에서 온 소년>을 촬영하기 바로 전 타이베이에서 보았다. 에너지와 생기로 가득 찬, 매우 젊고, 매우 새로운 그의 점프컷 사용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 시기 시네마 어디에서도 그런 걸 발견하기란 어렵다. 나는 고다르가 롤마다 충분한 (양의) 필름을 갖지 못했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 그는 배우가 연기하는 장면 중간에 컷을 해야만 했다. 그는 배우들에게 다른 롤로 교체하는 동안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고 했고 다른 롤로 바꾼 다음 멈췄던 지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몽타주를 하면서 그가 그렇게 한 것이 튀는 이미지를 발생시켰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한 건 정말 재기 넘치는 일이다. 그것이 이후 나의 모든 영화에서 몽타주에 대한 나 자신의 생각에 깊이 영향을 미쳤다.”
지금 우리가 쉰살을 맞은 누벨바그를 기억해야 한다면 그건 누벨바그가 낭만의 도시 파리의 신화여서가 아니라 영화를 사랑했던 어느 악동들이 끝내 잠자코 사라지는 대신 일으킨 막무가내의 영화혁명이었기 때문이다. 그 역사는 되풀이된다. 허우샤오시엔(대만 뉴웨이브)도 그중 하나다. “누벨바그라는 용어는 1957년 10월3일자 <렉스프레스>에 프랑수아즈 지루가 쓴 ‘젊은이들에 관한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트뤼포: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에 쓰여 있지만 그 유래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변주되며 생성되는 에너지가 중요할 뿐. 누벨바그, 생일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