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연예인들이 내는 책을 크게 세 종류로 나누면- 활자보다 그림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므로 아이돌의 사진집은 제외하고- 에세이집, 과거 일련의 사건들에 관한 비화가 담긴 폭로집 그리고 ‘게닌’(芸人, 우리말로 ‘개그맨’이라는 뜻)들이 내는 것으로 분류된다. 앞의 둘은 설명이 없어도 쉽게 이해가 가지만 ‘게닌’들이 내는 책은 좀 독특하다. 최근 2~3년간 일본에서는 개그맨들이 내는 책들이 장르와 소재 나아가 주제를 불문하고 대박을 터뜨렸다. 그 영역은 에세이집부터 소설까지 다양하다.
일본의 유명한 조사기관인 오리콘(Oricon)이 발표한 ‘2008년 탤런트 책’ 판매순위를 보면 상위 1~5위 중 상위 네 자리를 모두 게닌들이 낸 책들이 점령하고 있다. 1위는 2인조 개그콤비 ‘기린’의 다무라 히로시의 자적전 이야기를 담은 <홈리스 중학생>이다. 정리해고를 당한 아버지가 가족을 ‘해산’시키면서 졸지에 노숙자가 된 실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2008년에만 66만권이 팔려나갔다. 2007년 9월에 발간된 이래 현재까지도 꾸준한 판매고를 기록, 총판매부수는 약 222만권에 이른다. 이케와키 지즈루, 고이케 텟페이 등이 캐스팅되어 동명 타이틀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다무라는 이 책이 발간되기 전까지는 TV에서 그리 큰 유명세를 얻지 못하던 평범한 개그맨이었지만 책이 밀리언셀러가 되자 개그맨 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의 몇 십배에 이르는 수입을 올렸다. 그리고 대중은 ‘바보’를 자처하는 모니터 너머 개그맨의 실제 삶에 드리워졌던 고통과 가난의 나날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다.
2008년 연간 판매량 2위에 오른 가미지 유스케의 <가미지 유스케 이야기>는 자신의 일상사를 정리한 포토 에세이집. 이전에 소개한 ‘블로그 랭킹’에서 ‘1일 방문자 수 블로그 세계 1위 기록’으로 기네스에도 올랐던 당사자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보는 것으로도 성에 안 찼는지 그가 낸 에세이집도 29만권이나 팔렸다. 일본 최고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비롯해 유명 연예인들을 지인으로 둔, 또 다른 연예인의 일상사를 엿본다는 대중의 관음증과 화려한 세계에서 소박함을 잃지 않는 진실성에 대한 호감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경우다. 17만권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해 2008년 ‘탤런트가 발간한 책 판매량’ 3위에 오른 <세키 아키오의 도시전설>의 저자 세키 아키오 역시 ‘헬로 바이바이’라는 개그맨 콤비의 멤버다. 도시의 각종 미스터리를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나간 작가는 한국의 만화월간지 <팝툰>에도 글을 실어왔는데, 어떤 의미에서 개그맨이 아니라 라이터의 영역에 더 가까운 존재인 듯하다. 사실 소비자가 단순히 ‘연예인이 낸 책’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에 돈을 내는 건 당연하다. TV에서 ‘말’로 먹고사는 그들이 ‘글’로도 먹히는 것은 그 필연성에 근거한다.
역대 일본에서 가장 많은 책을 판 개그맨은 마쓰모토 히토시로 ‘다운타운’이라는 일본 최고의 개그 콤비 중 한명이다. 그는 최근 몇년간 계속되는 일본의 ‘개그맨 출판 붐’의 선구자적 존재로 <주간 아사히>에 연재하던 칼럼을 모아 97년 처음 낸 에세이집 <유서>가 지금까지 231만권이 팔려나갔다. 이후에도 그가 낸 책의 다수가 매년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이야기꾼들은 그 수단이 ‘입’이든 ‘펜’이든 어디서든 이야기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