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4년 전 가족과 육아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관심은 많았으나, 거의 실천하질 못했던) 나에게 ‘공동육아’와 ‘대안학교’의 학부모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일상생활의 변화를 동반했다. 내 방은 없어졌고, TV와 컴퓨터는 네 식구가 함께 생활하는 안방으로 옮겨졌으며, 거실은 아이들의 독서실이자, 놀이터가 되었다. 개인당 하루 30분 이상의 영상 관람과 컴퓨터 사용이 금지되었고, 영화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글은 나의 과거사이다.
중학교 2학년, 처음으로 혼자서 동시상영 극장을 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내가 선택한 영화는 <특선 U보트>였다. 동시상영관이었던 관계로 <개인교수>라는 영화를 얼떨결에 덤으로 보았고, 성적인 부분에 거의 관심이 없었던 15살 청소년은 ‘울렁증’이 걸릴 정도로 신기했다. 영상의 한 속성으로서의 ‘관음증’을 처음으로 경험한 것인데, ‘실비아 크리스텔’이라는 여배우가 나에게 준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뒷골목 만화방에서 <차타레 부인의 사랑> 무삭제판을 보기 위해 ‘독서실’을 핑계 삼아 밤새 만화방에 있었던 기억, <마타하리>를 개봉날 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비디오로만 출시된 <쥬리아>를 찾기 위해 비디오대여점을 모두 뒤진 기억, 대학 재학 중 <성애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집회 이후의 뒤풀이를 마다하고 몰래 극장으로 향했던 기억…. 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을 때 <엠마뉴엘1, 2> 무삭제판 DVD를 구했고, 13시간이 넘는 여행시간이 ‘풋풋했던’ 실비아 크리스텔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
‘실비아 크리스텔’의 영향에 의해, 순전히 ‘관음증’이라는 하나의 욕구 때문에 영화를 보고 싶은 날, 나는 비디오가게를 이잡듯이 뒤졌다. 그래서 발견한 또 다른 배우는 ‘플로랑스 게랭’(Florence Guerin)이다. 한국에서는 <테크닉1, 2>라고 소개된 영화의 주인공인데,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하녀 라본느>라는 제목의 비디오가 내가 볼 땐 최고의 작품이다. 만약 ‘셰릴린 펜’이 <투 문 정션>(Two Moon Junction) 이상의 필모그래피가 있었다면 아마도 몇년 동안 비디오가게를 뒤지는 목록에 ‘셰릴린 펜’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발레리 카프리스키’는 <브레드레스>(Breathless)에서 시작되었고, ‘잘만 킹’이라는 감독의 라인업을 끝없이 뒤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파리애마>의 유혜리는 한국 여배우 중 베스트였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순전히 유혜리 덕분에 관람한 영화였을 정도로.
돌이켜보면 내가 선호하는, 관음증을 유발했던 대부분의 영화 내용은 ‘낯선 존재’와 ‘정숙한 여인’이라는 공통분모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랬을까? 동네의 모든 비디오방을 뒤져서 난 왜 그토록 판타지의 대상에 골몰하거나, 또 다른 판타지를 찾아나섰을까?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의 끌림이 없어진 이유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한 때문일까? 어찌됐던 난 지금 일곱살 딸과 결혼한 지 12년 된 아내만으로도 벅차다(?).
고영재 이런저런 독립영화쪽 일을 하다가 <우리학교> <궤도> <워낭소리> <농민가>를 제작했고, 현재는 <똥파리> 양익준 감독의 매니저(?)일도 함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