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누구에게 오마주(Hommage)를 바친다, 는 그 말이 어찌나 찡하게 들리던 때가 있었던지. 프랑스어이며 존경과 경의을 뜻하는 말이지만 영화세상에서라면 계보와 경험에 대한 가슴 벅찬 자기 인정 또는 존재 증명의 행위로 통한다. 그 유명한 오마주의 달인 브라이언 드 팔마는 평생을 히치콕에게 오마주를 바치며 살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정작 거기에서 영영 벗어날 것 같지 못하자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했다. 한때 브라이언 드 팔마와의 인터뷰에서 금기시되는 질문은 히치콕에 대한 영향을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안간힘을 써서 히치콕을 벗어나 <리댁티드> 같은 영화를 만들자 그 영화는 시큰둥해진다.
주목받지 못했지만 오마주의 영화들은 최근에도 있었다. 독일의 노부부가 여행을 하다가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도리스 되리의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신경 곤두세워 보지 않아도 오즈 야스지로의 <도쿄 이야기>를 은연중 번안한 것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그보다 몇배는 더 뛰어난 예도 있다.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클레어 드니의 <35 럼샷>은 홀아버지가 은퇴하고 딸은 어느덧 시집을 갈 나이가 되는 이야기다. 영화는 어느 구석에서도 직접적인 언질이 없지만 이건 어디서인가 본 이야기다. 오즈의 <만춘>이다.
최근 한국영화 중에도 있다. 김성홍의 <실종>에서는 어느 허름한 시골 백숙집의 살인마가 등장한다. 그는 겉보기에는 정상이거나 다소 나약해 보이지만 실은 살인마다. 그에게 동생이 살해당하자 언니가 찾아오고 역시 위험에 빠진다. 이 이야기를 두고 강호순 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실은 원본이 되는 영화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실종>은 히치콕의 영화 <싸이코>의 중반 이후 이야기를 약간 비틀어 가져와서 만든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이츠 모텔이 아니라 백숙집, 즉 ‘<싸이코>의 백숙집 버전’. 한 작품이 오마주의 방식을 취하고 있을 때 그걸 알아차리는 건 그 작품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