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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폐인들, 트레키는 누구인가

그들의 우주는 열려있다

개인적인 경험. 내가 트레키(Trekkie: 열광적인 <스타트렉> 팬들을 일컫는 고유명사)라는 사람들을 처음으로 인지한 건 심지어 <스타트렉>이라는 시리즈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도 전이었다. 아니, 이미 알고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리즈는 본 적 없지만 드라마 에피소드의 각색판이 어린이용 문고본이나 잡지 연재물로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트레키 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트레키키즈> 1, 2편 포스터.

하지만 당시 내가 <원더우먼> 3시즌 에피소드인 <Spaced Out>에 나오는 SF 텔레비전 시리즈(<스타트렉>은 아니었지만 <스타트렉>의 패러디가 아닐 수가 없었다)의 우스꽝스러운 팬들과 <스타트렉>이라는 드라마를 하나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던 게 분명하다. 처음에 난 그들이 그냥 웃긴다고 생각했고, 다음엔 미국에서는 어른들이 저렇게 놀아도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럽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어른 중 저렇게 재미있게 노는 사람들은 없었다. 당시 정말 어린애였던 나는 장난감이 결합되지 않은 유희를 이해하지 못했다(사실은 지금도 이해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어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며 노는 건가?). 하지만 그 에피소드에 나오는 정신 나간 사람들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놀았다. 그들에겐 장난감이 있었고 그 장난감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판타지가 있었다. 그런 것을 보고 놀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은가?

아이작 아시모프, 스티븐 호킹, 그리고 오바마…

사실 트레키들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놀림감이었다. <원더우먼>에서도 그들은 우스꽝스러웠고 다른 패러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들은 아군한테서도 공격을 받았다. 1986년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윌리엄 섀트너가 호스트로 나왔을 때 그는 유명한 “Get a Life” 코미디를 선보였다. 그 단편에서 <스타트렉> 컨벤션에 참석한 그는 어이없는 질문을 해대는 트레키들 때문에 폭발하고 만다. “제발 그렇게 살지 마! 이건 그냥 텔레비전 쇼일 뿐이야! 나가서 네 인생을 살아!” 딱하게도 그의 연설은 주최쪽의 농간과 협박에 의해 <The Enemy Within> 에피소드에 나왔던 사악한 커크 선장의 연기로 포장되고 팬들은 안심한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에피소드에서도 볼 수 있듯, 트레키는 미국 기크 문화의 가장 막장스러운 사람들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참 전에 종영된 텔레비전 시리즈의 세계에 집착하고 유치한 장난감들을 모으며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해서 서른이 넘어서까지 부모 집 지하실에서 산다. 아, 물론 그들은 여자와 데이트도 못해봤다(여기서 그들 대부분의 성별이 폭로된다).

그 때문에 슬슬 팬들 내에서도 출신을 가르는 시도가 벌어지기도 한다. 여기서 새로운 이름이 등장하고 팬들은 그 이름에 따라 재배치된다. 자신을 트레커로 분류하는 팬들은 적어도 자기네들은 트레키처럼 무능하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머리 좋은 기크들이고 높은 연봉을 받는 고급 직종의 종사자들도 많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내놓는 리스트에 오른 이름들은 막강하다. 아이작 아시모프, 스티븐 호킹, 마틴 루터 킹, 앨 고어, 마이크 올드필드, 톰 행크스…. 참,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역시 트레커인 것 같단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스포크를 연기한 레너드 니모이에 따르면 그가 오바마를 만났을 때 악수 대신 셋째와 넷째 손가락 사이를 벌리는 발칸 인사를 하더라나!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트레키 못지않다. 아니, 오히려 더 튄다. 그들은 눈에 뜨이는 소동을 저지를 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트레키들을 다룬 유머스러운 다큐멘터리 <트레키즈>에 언급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트레키라기보다는 트레커다. 그들은 클링온어를 배우고 사무실을 엔터프라이즈 우주선처럼 디자인하고 발칸족처럼 보이기 위해 귀수술을 할 생각을 갖고 있으며 배심원이 되면 정장 대신 스타플리트 장교 유니폼을 입고 법정에 나간다. 이런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자신을 노출하게 되면 <스타트렉> 팬들은 막장 중의 막장이라는 악평을 다시 듣게 된다.

수많은 이들의 아이디어를 흡수하며 확장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트레키/트레커들이 그렇게 괴상한가? 그들의 영원한 적수 <스타워즈> 팬들은 어떤가? 그들도 트레키처럼 부모 지하실에서 살며 장난감들을 모은다. <반지의 제왕> 팬들은 어떤가? 트레키들이 클링온어를 한다면 그들은 요정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미들 어스의 역사를 줄줄 읊을 것이다. 달렉 분장을 하고 국회의사당에 쳐들어간 열성 <닥터 후> 팬은 어떤가? 새로 발견한 행성과 위성에 지나와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을 붙인 <여전사 지나>의 팬은? <바빌론5> 팬들은? <건담> 팬들은? 일단 일본으로 넘어가면, 일본의 오타쿠들은 가장 흉악스러운 트레키들이 했던 것보다 늘 몇배 더 심한 짓을 한다. 얼마 전에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결혼하겠다고 소동을 부린 남자 일은 잘 풀렸나?

여기에 대한 답을 한다면, 트레키를 아주 특별한 존재로 정의하는 무언가는 없다는 것이다. 트레키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던 1970년대 초에는 특이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트레키만큼 열정적인 팬들은 다른 팬덤에서도 존재한다. 그들 모두 각자의 독립된 세계를 꾸리고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이들은 특별히 다를 게 없다. 그러나 트레키들을 의미있는 존재로 만드는 방향성은 존재한다. 이들은 유일한 존재는 아닐지 몰라도 특정 그룹의 의미있는 선두주자이기는 하다. 여기서 그들의 괴상한 패션 취향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스타트렉> 팬덤 안에서 성장한 골수팬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머리 좋은 기크들과 높은 연봉을 받는 고급 직종의 종사자들도 많다. 특히 그들 중 전문 과학자들의 투입은 주목할 만하다.

그 특징은 이들의 우주가 열려 있다는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독재 아래 있는 <스타워즈>의 세계와는 달리 <스타트렉>의 세계에서 크리에이터이 진 로덴베리의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들의 세계는 오리지널 시리즈, 영화판, 이후 TV시리즈들(<더 넥스트 제너레이션> <딥 스페이스 나인> <보이저> <엔터프라이즈>)로 수십년간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흡수하면서 확장되었다. 그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팬덤 안에서 성장한 골수팬들이었다. 특히 그들 중 전문 과학자들의 투입은 주목할 만하다.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에서 혼혈아가 태어날 수 있다고 순진무구하게 믿었던 오리지널 시리즈의 과학과 최신 과학 이론들의 경쟁장이 된 후반 시리즈의 과학 차이를 주목해보라. 이 세계에서 엔터프라이즈호의 모형과 스타 플리트 유니폼보다 더 중요하고 매력적인 것은 열려 있는 허구의 세상 안에서 현실 세계의 진짜 지식으로 스스로 의미있는 창조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시리즈의 과거 회귀가 팬덤에 끼칠 영향은

지금 <스타트렉>의 팬덤은 다소 수상쩍은 과도기를 겪고 있다. <보이저> 시리즈와 마지막 영화판 이후, <스타트렉> 프렌차이즈에 속해 있는 작품들은 계속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엔터프라이즈>와 곧 개봉되는 영화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모두 프리퀄이며 아직 쓰이지 않은 과거의 재해석이다. 늘 미래를 향해 달려갔던 시리즈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역사 쓰기를 중단하고 (상대적) 과거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영화가 시리즈로 이어진다면 앞으로도 이런 성향은 계속될 것인데, 이 현상이 팬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혼란스러운 세계관을 재정비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어져온 <스타트렉> 팬들의 진취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낮게 평가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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