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울 슈팅 매치> The Whole Shootin’ Match
1978년 감독 이글 퍼넬 상영시간 110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음성포맷 PCM 2.0, DD 2.0 영어 자막 영어 출시사 워치메이커필름스(미국, 3장)
화질 ★★★☆ 음질 ★★★☆ 부록 ★★★★☆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두편의 위대한 독립영화가 만들어진다(미국 독립영화의 거목인 존 세일즈가 데뷔작을 발표하기 직전이다). 초저예산으로 제작된 찰스 버넷의 <양 도살자>와 이글 퍼넬의 <호울 슈팅 매치>는 1980년대 이후 미국 독립영화의 폭발을 예언한 작품이다.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많다. 두편 다 오랫동안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전설로 남았고, 2007년에 기적처럼 구한 필름이 복원돼 대중과 재회했으며, 복원팀과 제작진이 힘을 합쳐 각각 훌륭한 DVD를 내놓았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호울 슈팅 매치>가 미국 독립영화에 끼친 거대한 영향을 파악하자면 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영화소개 중 몇 구절- ‘파크시티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로버트 레드퍼드는 저예산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파악했고, 곧 발족한 선댄스협회가 파크시티영화제를 선댄스영화제로 재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이 영화를 본 뒤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을 읽는 것으로 족하다. 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이리 야단일까.
<호울 슈팅 매치>의 주인공 로이드와 프랭크는 텍사스 오스틴의 외곽에 사는 촌뜨기 아저씨들이다. 로이드와 프랭크는 ‘번개 용역’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회사를 운명하는 동업자로 행세하는데, 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고물 트럭을 몰며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게 고작이다. 게다가 돈 벌 궁리로 나머지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은 매번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돈을 날리기 일쑤다. 개구리, 날다람쥐, 친칠라 농사로 사업자금만 말아먹은 두 사람은 로이드의 새 아이디어인 ‘폴리우레탄 사업’을 막 시작하려 한다. 어처구니없는 기계고장으로 그 사업마저 끝장난 뒤의 어느 날, 자동세차를 받던 로이드는 기막힌 기계를 생각해낸다. ‘물청소가 가능한 진공청소기’의 아이디어를 팔아 계약금을 받자 두 사람은 기쁨에 들뜨지만, 그들의 거창한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된다.
<호울 슈팅 매치>는 일체의 인공조미료가 가미되지 않은 천연의 작품이다. 당시까지 별 연기 경험이 없던 배우들의 연기는 마냥 자연스럽고, 자연광이 영화 전체를 소박한 빛으로 감싸고 있으며, 카메라는 인물과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 외에 별다른 욕심을 내지 않는다. 거칠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서부 남자인 로이드와 프랭크는 기실 보통 사람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이글 퍼넬은 상업영화에서 보기 힘든, 날것 그대로의 평범한 사람들을 보여주었고, <호울 슈팅 매치>의 인물들은 역으로 인물의 정형성을 비켜 갔다. 영화는 철딱서니 없지만 낙천적인 인물들의 작은 소망조차 실현되지 않는 현실을 풍자하는데, 몽상가이자 실패자인 로이드와 프랭크가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결말은 씁쓸하면서 사랑스럽다. 안타까운 점은, 고통과 슬픔을 술에 날려버리는 영화의 인물들처럼, 이글 퍼넬 또한 술 때문에 모든 재능을 탕진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사람들과의 불화 속에 할리우드로 진입하지 못한 퍼넬은 술과 거리의 인생을 전전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영혼을 다친 남자를 희생양으로 삼은 할리우드와 영화계는 때울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
2장의 DVD와 1장의 CD로 구성된 박스세트는 정녕 ‘애정과 헌신의 결과물’이다. 아름답게 복원된 영상, PCM까지 지원되는 사운드트랙, 2개의 음성해설, 퍼넬의 첫 번째 단편영화인 <헬 오브 어 노트>(27분), 퍼넬의 영화와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텍사스의 제왕>(74분, 퍼넬의 미완성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퍼넬이 생전에 행한 인터뷰(24분), 별도 제공되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CD, 두터운 책자는 한 비운의 감독을 기억하기에 모자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