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됐을 때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어떤 권유를 받았다. 새로운 비즈니스가 있는데 이 판매권리를 몇 십만엔으로 매입하면 나중에 큰 돈을 번다는 거였다. 그때 나는 그 투자가 악독한 무한연쇄상법임을 금방 알아차리고 즉석에서 거부했다. 사회생활 병아리였던 내가 큰돈을 잃지 않았던 것은 일본의 유명 만화 <나니와의 금융도>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니와 금융도>는 1990년부터 1997년까지 한 잡지에 연재된 만화다. 단행본은 1천만부 이상 발간돼 문고판까지 나왔다. 이 만화는 한국에서 히트한 드라마 <쩐의 전쟁>과 배경설정이 비슷하다. ‘나니와’는 일본 오사카의 한 지방 이름인데, 그곳에서 사채업자로서 일하는 청년이 주인공이다. 독특한 오사카 사투리에다 악역들도 독자들이 속으로 미워할 수 없을만큼 익살스럽다. 사채업자나 사기꾼들, 그리고 그들에게 휘말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 경영자나 노동자들의 비애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 아오키 유지는 2003년에 사망했으나 아오키가 남긴 회사 아오키유지프로덕션 이름으로 <신 나니와 금융도>가 최근 주간지 <SPA!>에 재연재되어 팬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재연재되는 작품은 히트작품의 리바이벌이 아니라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경제 위기 속에 일본에서는 젊은 실업자나 비정규직 문제가 날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본에서는 <게 공선>이라는 노동자의 파업투쟁을 그린 소설이 재발행돼 지난 1년 사이 60만부나 팔려 1929년의 소설 발표 이래 누계 160만부가 발행됐다. <나니와 금융도>의 재연재에는 그와 비슷한 배경이 깔려 있다.
아오키 유지는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회사와 공무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으나 둘 다 몇 개월 만에 그만뒀다. 그 뒤 주로 술집이나 파친코 종업원으로 일했으며 44살 때 이 작품으로 만화 작가로 데뷔했다. 일본의 뒷골목사회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그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구조에 대해 늘 모순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니 코믹한 <나니와 금융도>에는 일본의 현대사회에 대한 “자유도 평등도 없다”는 작가의 비판정신이 깔려 있다. 아쉽게도 아직 한국어로 번역은 안됐다. 현재 한국사회와 겹치는 부분도 많으니 하루빨리 한국판이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