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1일 <NHK> 홍백가합전 무대에서 펼쳐진 진풍경 하나. 엔카 가수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의 순서에 난데없이 벽안의 록 기타리스트가 등장하여 곡의 전주를 열었다. 록 팬들이라면 한눈에 알아보았을 그 연주자의 이름은 마티 프리드먼. 한때 메탈리카와 함께 스래시 메탈계를 양분한 그룹 메가데스의 리드 기타리스트였던 인물이다. 그가 오래전부터 동양의 음률에 심취해 있었고 심지어 엔카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으나 연말 홍백가합전의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은 록 팬들과 엔카 애호가들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으리라. 마티 프리드먼의 열띤 솔로가 작렬했던 홍백가합전의 그 노래는 바로 이시카와 사유리의 대표곡 중 하나인 <아마기 고개>였다.
<아마기 고개>는 엔카를 듣지 않는 일본의 젊은 층들조차도 ‘이 노래는 안다’고 할 만큼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엔카 중 하나다. 후지산 남단에 위치한 아마기 고개는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이즈 반도의 관문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이즈의 무희>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즈로의 여행 중 만난 떠돌이 무희와의 남모르는 연정을 다룬 이 소설에서 아마기 고개는, 도쿄라는 현실과 이즈라는 환상의 공간 사이에 위치한 상징적 공간으로 다뤄졌으며 이후 이 상징은 일본 문화 속에서 여러 형태로 변용되어왔다.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소설 <아마기 고개>에서 <이즈의 무희>를 범죄소설로 재해석했으며, 이시카와 사유리는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다면 당신을 죽여도 좋습니까?’ ‘활활 타오르는 화염을 뚫고 당신과 넘고 싶은 아마기 고개’라는 가사로 가히 타나토스에 맞닿아 있는 농염한 에로스의 공간으로 아마기 고개를 노래했다.
19금에 가까운 가사의 이 노래 <아마기 고개>는 일본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의 테마송이기도 하다. 2008 시즌부터 시애틀 마리너스의 홈구장에서는 이치로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이 곡이 울려퍼지고 있다. ‘기록이라든가 여러 가지 것을 넘고 싶다’는 의도에서 자신이 직접 이 곡을 선택했다는데, 아마도 <아마기 고개>에 대한 가장 이채로운 해석이 아닐까. 하긴 이치로의 올해 나이 36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세계대회에 나갈 기회가 마지막이었을 그에게 이번 WBC 또한 노래의 가사처럼 ‘활활 타는 땅을 기어서라도 넘고 싶은’ 고개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