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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미술계의 정성일?
장영엽 2009-03-26

<비평의 지평 전>/5월17일까지/일민미술관/02-2020-2055

직업병은 어쩔 수 없군 지수 ★★★★ 평론가의 사생활 노출 지수 ★★★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감독 데뷔 선언은 2008년 한국영화계의 흥미로운 화젯거리였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그의 날카로운 필치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영화감독들이 많았기에 “어디 한번 두고 보자”는 소리도 간간이 들려왔고, 대한민국 대표 영화평론가가 만든다는 영화는 도대체 어떤 작품일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2009년 한국미술계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들이 들려올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중견 미술평론가 10명이 직접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출품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3월13일 시작한 따끈따끈한 전시로, 5월17일까지 계속된다. 이름하여 <비평의 지평 전>이다.

이번 전시에 참가하는 평론가들은 다음과 같다. 강수미, 류병학, 고충환, 반이정, 장동광, 최금수, 서진석, 임근준, 유진상, 심상용. 이들은 한국미술계의 다양한 흐름을 포착하고 쟁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전시의 메인 테마는 비평가 자신 또는 그들이 추구해온 예술관이다. 그동안 작품과 관객 사이를 차분히 중개하는 것이 한국 미술평단의 보편적인 경향이었다면, 전시에 참가하는 열명의 평론가들에겐 좀더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역할을 탐구하고 모색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흥미로운 부분은 전시 곳곳에서 드러나는 평론가들의 ‘직업병’이다. 언어를 도구로 다루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작품마다 말과 글의 활용이 눈에 띈다. 어떤 이는 메신저 채팅을 하고,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하는 평론가의 일상을 퍼포먼스로 구성했으며(반이정, <평론가의 방>), 어떤 이는 전시장을 서재로 꾸미고 책장 안을 자신이 쓴 평론집으로 채웠다(류병학, <서재 살인사건>). 관객과 평단의 소통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독자를 상대로 소통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정해진 시간 동안 불특정 관객을 상대로(심지어 관객이 한명도 없을지라도) 심포지엄을 여는 비평가도 있다(강수미, <비평의 기다림: 미술-독자의 비평하기>). 아무래도 어떤 부연설명 없이 그저 ‘보여주는’ 예술가의 작품보다는 좀더 친절한 전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평론가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훔쳐보는 은밀한 재미도 있다. 전시에 참여한 몇몇 이들은 평론가들에게 궁금한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자진해서 털어놓는데, 이 부분이 재미있다. 간단하게 두 가지만 소개한다. 하나, 당신은 당신의 글을 후회한 적이 있는가. “열거하자면 기획자와 작가의 심장에 비수를 꽂은 원고가 부끄러울 만큼 많은데, 개중엔 신중히 검토했어야 할 졸고도 많았음을 자인한다.”(반이정) 둘, 비평가가 작품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건 정당한가. “작가는 자기만의 ‘개똥철학’이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개똥철학도 없는 작가가 어떻게 작품 제작을 할 수 있겠는가? 비평가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의 개똥철학도 없이 어떻게 작품비평을 할 수 있겠는가?”(류병학)

사진제공 일민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