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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꿈의 아파트 위로가 되오
장영엽 2009-03-19

이정혜 <주거 연습 전>/4월26일까지/아트선재센터

대한민국은 아파트의 나라다. 집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아파트가 연상되는 이 나라에서, 어떤 아파트에 살고 있냐는 질문은 개인의 생활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다. 어떤 아파트에 살 것인지 결정하려면 모델하우스를 보면 된다. 그곳은 아파트가 지향하는 삶의 양식을 짐작해볼 수 있는, 일종의 공간 설명서니까. 그런데 모델하우스가 제시하는 꿈의 공간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곳은 혼자 사는 독거노인에게도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인가? 혹은 애묘가 여성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고양이를 별탈 없이 키울 만큼 충분히 안전한가. 어쩌면 아파트의 획일적인 창문들처럼 아파트가 사람들의 삶을 규격화하고 표준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정혜 작가는 말한다. 새로운 형태의 ‘주거 연습’이 필요한 이유다.

<주거 연습 전>은 아빠, 엄마, 아이들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평균 가족’이 아닌 이들을 위한 삶의 공간을 소개한다. 얼핏 보면 다른 모델하우스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꽤나 섬세한 배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세명의 요가 수행자 여자들과 아홉 마리의 고양이, 두 마리의 앵무새’를 위해서는 방의 구분이 없고 커다란 나무와 그물이 함께 설치된 14.8평형 모델하우스를, ‘광장공포증을 가진 늙은 시인’을 위해서는 지붕 사이로 하늘을 볼 수 있고 깔때기로 바깥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0.9평형의 공간을 마련했다. 정말 사랑스럽고 따뜻한 상상이 아닌가. 들쑥날쑥한 집값에 지친 이들과 마음 둘 곳 없어 수백만 쌍둥이 아파트 중 한곳에 살고 있을 어떤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