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의 사무실은 아무도 없었고 고요했다. 시나리오를 써야 했지만 <로마: 토털 워>라는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게임을 켰다.
남부 이탈리아에는 한니발의 군대가 캄파니아 지방에 머물렀고 북부 이탈리아에는 갈리아인들이 대규모로 남하해 왔다. 이런, 안팎의 위기였다.
게임 화면에는 이 어려운 시기의 로마를 구원하기 위해 로마 원로원은 로마의 국정을 당신에게 맡겼다, 라는 메시지가 떴다. 오케이를 누르기 전에 잠시 고민했다. 나는 사실 장편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써야 하기 때문에 맡고 싶지 않았지만 정중한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뭐 3시간 정도라면…’ 하는 심정으로 로마군 최고사령관직을 받아들였다.
이때 주말에는 안 나오겠다는 프로듀서가 갑자기 들어왔다. 평소부터 반사 신경이 약했던 나는 게임 화면을 프로듀서에게 들키고 말았다.
“너 시나리오 다 썼어?” “아니…. 이제 해야지.” “내일이 마감 아니야? 도대체 왜 그래?” “그게… 로… 로마 제국이 위기에 빠져 있어.” “로마 제국의 위기가 우리 장편애니메이션의 위기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야?” “아니….” “로마 제국은 로마인들에게 맡기고 너는 장편애니메이션의 위기나 극복해.” “알았어.” 프로듀서가 갈 때까지 세 시간을 시나리오를 보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로마에 가 있었다.
프로듀서가 가고 한밤중이 되자 나는 컴퓨터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저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했던 말을 외쳤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결국 루비콘 강을 건너고 말았다. 실제로는 컴퓨터의 게임 실행 아이콘을 눌렀을 뿐이지만. 사령관은 전선에 복귀했다. 왠지 게임상의 모든 부하 장군들이 나의 복귀를 반기는 눈치였다(그럴 리가 없잖아! 그냥 게임회사가 만든 일러스트일 뿐이라고).
나는 모든 군대를 남부 전선에 집결시키라고 명령했다. ‘일단 북부 이탈리아는 포기한다.’ 내가 결정했다. ‘하지만 원로원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부관이 외쳤다.
하지만 한니발이 먼저다. 원로원은 한니발 바르카를 모른다. 알프스를 넘어온 카르타고의 애꾸눈 영웅. 용장 하밀카르의 아들. 바알 신전 앞에서 아홉살 때 로마의 멸망을 맹세한 한니발이 코끼리까지 거느리고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의 발목 부근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가 에스파냐에서 데려온 정예 중무장 보병이 아직 건재했다. 한니발을 내버려둔다면 반년 안에 이탈리아 제2의 도시 카푸아를 함락시킬 것이 분명했다.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통일된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갈리아인들은 두 번째 문제다.
전투는 격전의 연속이었다. 나는 결국 한니발을 막아내고 로마를 지켰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 9시였다. 아… 시나리오는 어쩌란 말인가….
장형윤 애니메이션 감독. <아빠가 필요해> <무림일검의 사생활>등을 만들었다. 스튜디오 '지금이 아니면 안돼'에서 만들기만 하면 꽤 재미있을 것 같은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