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상운면

<워낭소리>가 독립영화라고 불리기 민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모든 상업적인 고리를 끊어버리고 만들었던 ‘그들만의 영화’가 이젠 예매율 1위를 당당히 지키는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영화가 됐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이야기가 그제야 따뜻한 숨소리를 찾게 된 것이다. 영화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워낭소리’를 소방울 소리로 기억하겠는가.

‘워낭소리’는 그 청명한 소리만큼이나 서글픈 여운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듣기 쉽지 않은 소리다. 밭이나 들에서 일하는 소 대신에 기계가 대신하는데다, 노령의 농부들이 소를 부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CF 촬영을 위해 <워낭소리>와 비슷한 느낌의 장소와 인물을 찾기 위해 경북 봉화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처음부터 영화를 찍었던 부근은 아예 헌팅에서 제외했다. <워낭소리>가 흥행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가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해 그분들의 평온한 일상을 방해한다는 기사를 읽었기에 혹시나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길이 없어 기차 터널로 다녔다는 곳

울진, 봉화, 영주, 안동 지역을 헌팅하면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안타까움’이었다. 농촌 마을 어디를 가나 70~80대의 어르신들만 있을 뿐이고,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가 더 많이 생존해 계셨다.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농촌에서도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가 많다. <워낭소리>의 감독은 이것이 어쩔 수 없는 농촌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워낭소리>는 봉화를 선택한 영화지만, 사실상 농촌에 사는 모든 촌로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면 봉화가 어떤 땅인지 궁금해진다. 봉화는 헤프다 싶을 정도로 산이 많은 곳이다. 청량산을 중심으로 굽이굽이 안 굽은 길이 별로 없는데, 산이 높고 물이 많으니 당연히 많은 절경을 만들어낸다. 이왕 봉화를 가보고자 한다면 진정 멋진 절경의 마을 2곳을 보고 올 것을 추천한다.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승부마을과 울진군 서면 전곡리 원곡마을이다.

봉화의 승부마을과 울진의 원곡마을 주민들은 옛날부터 왕래가 있었는데 두 마을을 잇는 계곡이 워낙 험해 기찻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터널이나 다리에 들어섰을 때 기차와 맞닥뜨린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은 다리 곳곳에 피할 곳이 만들어져 있고, 걸어 다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원곡마을의 풍경은 예사롭지 않다. 전국을 다니며 봐온 풍경 좋은 마을 베스트3 안에는 들 것이다. 이 원곡마을이나 승부마을도 우리가 보기엔 ‘오지’임에 틀림이 없고 불편해 보여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정작 이곳에 사는 분들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봉화군 석포면 승부마을

경북 울진군 서면 전곡리

원래 원곡마을과 승부마을은 모두 울진 땅이었다. 하지만 승부마을의 주변 산세가 험해 울진에서 이 마을로 오려면 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야 했다. 바로 옆 울진의 원곡마을과는 기차로 5분 거리지만 바로 가는 길이 없어 50km가량을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행정관리상 어려움이 많아 봉화군에 땅을 준 것이다. 바위를 깎아 만든 개울가의 길을 지나 언덕을 오르다 보면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승부마을은 그때쯤 눈앞에 나타난다.

사랑하는 이에게 ‘승부역 엽서’를

승부마을은 알프스의 고원마을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곳이다. 아직 난개발의 모습이 없고 원래 모습대로 ‘그냥’ 있는 이 마을의 매력은 ‘높이’ 있다는 것이다. 주변으로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커다란 산들의 봉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계곡의 뿌리에는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계곡을 따라 나 있는 기찻길을 따라가다 보면 특이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난다.

무엇보다 승부마을의 최고 볼거리 중 하나는 승부역이다. 최근 들어 겨울 눈꽃열차가 승부역에 정차하면서 많은 이들이 다녀가는 작은 역이다. 역을 둘러보다 보면 예쁜 우체통 하나를 발견한다. 그 옆에는 작은 부스가 있는데 들어가보니 승부역 사진과 철길이 프린트된 우편엽서가 있다. 노르스름한 기름종이에 인쇄된 듯한 따뜻한 느낌의 ‘승부역 엽서’다. 돈통에 양심껏 엽서 값을 지불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엽서를 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겨울이 지나가면 이곳을 찾는 이들이 훨씬 적어지겠지만 다른 이들이 없는 때를 골라 찾아가는 것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