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하트빌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사랑에 울고 웃는 하트빌 사람들은 야구도, 럭비도 아니요, 체스 게임에 거품을 물고, 클레오파트라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랑 이야기에 열광하면서 나이를 먹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모조리 레즈비언 혹은 게이요, 동성애가 자연의 섭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하트빌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마법의 매치메이커 자나. 외로운 전학생 스티브를 마이크와 맺어준 것도, 애인에게 버림받은 로버타를 케이트와 이어준 것도 짝짓기 전문가인 그의 솜씨였다. 애정이 솟구치는 하트빌의 일상에서 사소하나마 문제라면 연애에 밝은 자나가 정작 자신의 사랑엔 까막눈이라는 사실. 학교 뮤지컬을 준비하던 자나는 스티브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만 스티브는 그의 속내를 알아차리기는커녕 여자(!)인 로버타와 열렬한 사랑에 빠져버린다. 어긋난 첫사랑에 절망하기 앞서 이성애자로 낙인찍혀 추방될 위기에 처한 스티브를 구하고자 자나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린다. 마법의 힘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하트빌을 이성애자들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이전과 전혀 다른 곳으로 탈바꿈시키기로. 오, 자나, 하지 마!(Zanna, Don’t)
<자나, 돈트!>는 패러디 정신으로 무장했음에도 ‘뮤지컬 동화’(A Musical Fairy Tale)라는 부제에 걸맞게 기묘하게 동화적인 오프브로드웨이발 뮤지컬이다. 눈 비비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듯 조곤조곤한 어투나 순진무구한 세계관, 시련을 거쳐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엔딩 등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지극하지 않냐면 그건 또 아니다. 한편으로 미국 틴에이저물을 표방한 이 뮤지컬은 치어리더, 럭비선수, 카우보이 등을 등장시켜 미국적이면서도 키치적이고 화려한 쇼를 선사한다. 물론, 현란한 눈요기에도 가장 진득하게 가슴을 울리는 건 이성애자의 사랑만을 사랑이라 하지 말라, 는 은근한 설득. 우연히도 이 뮤지컬을 본 게 2월14일, 밸런타인데이였다. 누군가가 당신의 사랑을 위해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버린 대가로 이 세상을 바꾸었으리라는 로맨틱한 상상력에, 차가운 바람에도 심장이 쿵쾅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