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간단한 퀴즈 하나로 시작하자. 오늘의 문제는 ‘나는 누구일까요?’다. 저는 1886년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던 미국의 존 펨블튼 박사가 소화제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다 엄청난 잠재력을 예감한 챈들러라는 사업가가 그 제조법을 사들여 1893년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상품으로 만들어 내놓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그뒤로 저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상품 중 하나가 되어 명성을 날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저의 주성분은 물과 설탕으로, 전체의 약 99.5%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미국 의회가 나머지 0.5%의 성분을 밝히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지요. 물론 저를 만드는 회사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 베일에 가려진 0.5% 때문에 제가 100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사랑이 어느 정도냐면 전 미국 사람들이 최소한 하루에 1번 이상은 저를 소비한다는 통계가 나왔을 정도입니다. 자, 저는 누구일까요?
정답은 바로 검은 설탕물, 콜라다. 정확히 말하자면 콜라의 대명사인 코카콜라다. 사람들이 콜라를 검은 설탕물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355ml짜리 일반적인 콜라병 하나에 들어 있는 설탕의 양이 무려 티스푼으로 10개 분량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설탕을 먹게 되니 자연스럽게 당뇨, 고혈압, 심장병 등 다양한 성인병뿐만 아니라 비만과 충치에 그대로 노출된다.
또한 콜라에는 카페인도 들어 있다. 물론 한잔에 100mg정도 들어 있는 커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콜라 한병에도 약 35mg의 카페인이 들어 있어 중독성을 유발하는 것이다. 수많은 의사들이 지속적으로 콜라를 포함한 탄산음료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달콤하고 톡 쏘는 콜라의 유혹을 견뎌내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특히 한창 단 것을 찾게 마련인 어린이들에게 콜라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눈에 보이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콜라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 배경에는, 콜라의 독특한 맛과 함께 콜라 회사들의 엄청난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지난 1999년 코카콜라사가 사용한 총광고홍보비가 무려 16억달러, 우리 돈으로 2조원에 가깝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런 엄청난 광고홍보비의 지출은, 우리 소비자들의 뇌리에 CM송과 북극곰 그리고 월드컵축구가 연결되어 있는 코카콜라만의 공간을 따로 만들어놓을 정도로 매우 효과적이다. 그런 마케팅 중심의 회사, 코카콜라가 전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며 영화로 제작되던 <해리 포터>를 놓칠 리는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영화 제작이 준비되던 단계에서 제작사인 타임워너에 무려 1억5천만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독점적인 전세계 마케팅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얻어냈다.
물론 그 계약으로 인해 영화가 코카콜라로 도배될 것이라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제기되었고, 그 때문에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직접 코카콜라를 마시는 장면이 삽입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발표가 제작사쪽에서 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콜라의 유해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많은 시민단체들은, 코카콜라가 <해리 포터>를 등에 업고 전세계적인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에 여전히 반대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영국 개봉 결과 첫 주말 성적이 <스타워즈 에피소드1>이 가지고 있던 역대기록을 무려 세배 이상 능가한 엄청난 흥행이 미국에서도 재현될 조짐을 보이자, 각 시민단체들은 ‘코카콜라의 상업성에 놀아나는 <해리 포터>’를 구하자며 본격적인 반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11월11일 워싱턴 DC 시사회장 앞에서 데모를 한 공익과학센터(CSPI). 이 단체의 디렉터인 마이클 제이콥슨은 “코카콜라가 <해리 포터>를 악용해, 아이들에게 쓰레기 같은 음식물을 팔아치우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CSPI의 이런 주장에 대하여 코카콜라는 자신들이 문맹퇴치를 위해 마케팅 비용과는 별도로 1800만달러를 희사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발하고 있는 중이다. 코카콜라의 대변인은 “코카콜라의 영화에 대한 지원과 책을 읽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지원을 부적절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CSPI의 주장을 일축해버렸다. 그러나 CSPI는 이러한 다소 억지스런 주장에 분개해, 지난달부터 <해리를 구하자>라는 이름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저자인 롤링과 제작사인 타임워너에 앞으로는 절대 코카콜라와 관계를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압력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그 홈페이지의 첫 페이지에는 방문자가 저자인 롤링에게 ‘콜라와 다른 탄산 음료는 모두 쓰레기!이므로, 코카콜라와의 계약을 통해 추가로 받게 된 로열티를 모두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한 캠페인에 기부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해리 포터>가 상업성의 대명사인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이상, 이러한 공동 마케팅 파트너십이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논쟁은 코카콜라가 과연 <해리포터>와 같은 어린이용 영화의 마케팅 파트너로서 적합한가 아닌가에 맞추어져야 한다. 이 경우 비록 현실에서는 어린이들이 코카콜라를 자유롭게 마실 수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영화와 상업적으로 결탁해 그 소비를 증가시키려는 시도는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비록 영화가 개봉된 이후, <해리 포터>를 하면 해리의 이마에 있는 번개 모양의 상처보다 코카콜라가 먼저 떠오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항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지만, 분명 우리의 뇌리 속 코카콜라의 영역에 <해리 포터>가 자리잡을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철민/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해리를 구하자’ 홈페이지 http://www.saveharry.com/
<해리 포터> 공식 홈페이지 http://harrypotter.warnerbr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