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세 료의 드라마가 방영 중이다. 영화야 작고 크게 수십편 출연한 그지만 드라마는 처음이라 꽤 화제가 되고 있다. 게다가 상대역은 <고쿠센> 시리즈의 나카마 유키에고, 작품은 대작가인 야마다 다이치가 10여년 만에 복귀하는 <후지TV>의 개국 50주년 기념드라마다. 제목은 <흔히 있는 기적>(ありふれた奇跡). 내용은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두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열어가는 과정이다. 역시 가세다운 드라마구나 싶지만 브라운관으로 보는 그의 느낌은 조금 덜하다. 느긋한 말투를 살려줄 스크린의 여유나 굼뜬 몸짓에 멋을 넣어줄 영화의 굴곡이 TV에선 아무래도 모자라다. 그는 오다기리 조나 아사노 다다노부처럼 고독한 게 멋있는 배우지만 그 둘과는 반대로 안으로 숨기면서 매력을 더한다. 오다기리와 아사노가 혼자 잘나 고독해 보인다면, 가세 료는 주위를 신경쓰느라, 그 어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다 고독해진다. 매우 일본적이고 동시에 영화적이다.
<흔히 있는 기적>이 TV의 모자람을 대신하는 건 야마다 다이치의 말발이다. 한번 말할 걸 두번으로 나눠 말하고, 그냥 뱉으면 될 것을 안에서 세네번 돌려 말하는 야마다의 대사는 가세다운 멋을 새로운 방식으로 완성한다. 한국식 속사포 말발과는 다르다. “가세: 이건 데이트는 아닌데,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할지.” “나카마: 죽으려고 했던 사람들의 모임?” “가세: 모임? 그건 남자 여자 사이의 귀찮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거군.” “나카마: 알겠어?” “가세: 응. 몇번이나 말했잖아. 데이트는 아냐, 데이트는 아니라고.” “나카마: 그러네.” “가세: 모임이라고 하면 그 점은 확실해지지 않을까.” “나카마: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가세: 조금도. 남녀가 만나면 보통 결혼이나 연애 이런 걸 재게 되잖아. 그런 게 없는 모임이 없을까 생각했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가입할게.” 후~. 그냥 가벼운 기분으로 만나자고 하면 될 것을 이렇게나 길게 얘기한다. 이 점이 매우 일본스러워 가세에 딱 들어맞는다. 상대에게 조금도 실례를 끼치지 않으려고 자기 주위를 수십번은 돌아보는 그 굼뜸 말이다.
가을이 지나 일본에 가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모양도 한국에서 하는 것와 달리 의료용에 가까워 뭔가 공포스러운 느낌도 준다. 심각한 바이러스가 퍼지는 건가. 처음엔 그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감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조금만 감기 기운이 있어도 마스크를 착용한다. 지하철, 버스 같은 공공장소는 물론 거리에서도 자신의 입김이 다른 이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 걱정한다. <AERA>의 한 기자는 이를 가리켜 마스크 민족이란 말까지 썼더라. 그래서 도쿄의 거리를 걸으면 가끔은 외로운 느낌이 든다. <흔히 있는 기적>의 가세 료처럼 모두가 말을 두세번은 참고 있다. 기적은 드라마처럼 서로의 마스크를 벗으면서부터일 텐데, 왠지 도쿄에선 그 과정도 굉장히 길 것 같다. “마스크를 쓰니 답답하네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고요. 내가 지금 마스크를 벗는 건 우리가 조금은 친해졌다는 걸까요? 그전에 병원은 갔다 오셨나요? 조금 전에 약을 먹었으니 괜찮을 거예요. 일단 5분만 벗었다 다시 쓸까요?” 후~, 뭐 이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