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 지수 ★★★★ 고전 지수 ★★☆
셰익스피어라는 꼬리표에 굳이 웨스트엔드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2007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을 찾은 <로미오 앤 줄리엣>은 영국 대가의 비극적 로맨스를 영어가 아닌 보드라운 프랑스어로 읊조리는 뮤지컬. 게다가 프랑스라니 그 이름에서부터 사랑과 시와 낭만이 배어나올 것 같은 달큰한 나라 아니던가.
2001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이래 자국에서만 200만 관객을 불러들인 이 히트뮤지컬은 고색창연한 명작을 원작으로 했음에도 절제라곤 모르는 스펙터클한 작품이다. 프랑스적인 기질을 물려받은 어린 연인들은 한층 더 열정적인 어조로 사랑을 칭송하고, 프로듀서 겸 작곡가 제라르 프레스귀르빅이 만든 뮤지컬 넘버들은 감정을 에둘러 말하는 법을 도통 모른다. 베로나 영주가 가창력을 폭발시키는 <베로나>부터 청춘들의 활기를 그대로 눌러담은 <세상의 왕들>, 시민들의 슬픔과 회한을 절절하게 옮긴 <죄인들>까지 드라마틱한 음악들이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연이어 연주된다. 같은 이유로, 어쩌면 여주인공의 소녀다움을 강조하려는 의도겠지만, 가성으로 꾸며낸 줄리엣의 연약한 노래들이 다소 밋밋하게 다가오는 게 작은 아쉬움이랄까.
막이 오르자마자 눈길을 휘어잡는 건 단 두개의 색상으로 채색된 강렬한 의상이다. 몬테규 가문은 빨강으로, 캐플렛 가문은 파랑으로 인상적인 대비 효과를 이루는데, 그래서 붉은 옷자락을 휘날리는 줄리엣과 푸른 옷을 걸쳐 입은 로미오가 한데 서는 것만으로 적지 않은 에너지를 발산한다. 초연 때부터 유명했던 움직이는 무대 장치는 다시 봐도 놀랍고, 조명으로 재현한 별빛 어린 밤하늘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어떤 이들은 지나친 해석이 아니냐 반문하겠지만 힙합이나 재즈댄스의 동작을 적극 활용한 댄스, 심지어 현대의 밤문화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자극적인 무도회 풍경 역시 색다른 눈요기임에 틀림없다. 모든 캐릭터들이 한곡 이상의 솔로곡을 노래하는, 공연시간만도 2시간30분에 달하는 대작이다 보니 나름의 만족을 누릴 방법 역시 다양하다. 눈썰미 좋은 이라면 셰익스피어를 연상케 하는 이름 모를 시인의 등장이나 줄리엣을 남몰래 사랑했다는 티발트의 고백 같은 작은 디테일에 즐거워할지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포함해 대부분의 캐스팅이 초연 때와 같다니 참고하시길. 경제도 어려운 마당에 지갑을 열기 부담스럽겠지만 비싼 공연 제대로 즐기고픈 사람이라면 1층 좌석을 예약하는 게 좋겠다. 와닿는 느낌이 상당히 다를뿐더러 커튼콜을 앞두고 관객이 무대 앞으로 달려나가 정겹게 손 흔드는 배우들을 휴대폰으로 찍어대는 광경을 멀리서 구경만 해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