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악한 영화에 등장하는 괴한들은 늘 도둑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다. 해적은 어깨 위에 앵무새를 앉힌 채 럼주를 마셨고, 집도 절도 없는 홈리스 뒤에는 얼핏 먼지 뭉치처럼 보이는 삽살개들이 오종종하게 따라붙었다. 자, 그럼 주인공이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유약한 영국 도련님이라면? 고소영처럼 생긴 샴고양이나 오른쪽 귀에 파란 리본을 맨 강아지가 생각난다. 그러나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의 벤 위쇼(세바스찬)가 안고 있는 건 곰이다. 윤기나는 짧은 밤색 털, 갈색과 고동색이 침착하게 섞인 유리 눈동자, 단호한 검정실의 ‘시옷 자’ 입. ‘알로이시어스’라는 고상한 이름을 가진 테디 베어는 세바스찬의 무릎 위에서 옥스퍼드의 기묘한 상징으로 성장한다.
에블린 워의 원작에서 또 다른 주인공 찰스(매튜 굿이 앞머리를 곱슬곱슬하게 말고 나와 이 역을 맡았다)는 세바스찬을 처음 본 순간을 숭상과 동경, 그리고 충격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그의 아름다움, 행동의 기이함은 그 끝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처음 봤을 때 그의 예쁜 얼굴보다 먼저 발견한 건 곰인형이었다.’ 1981년 영국에서 11부작 드라마로 방영될 당시 주인공은 제레미 아이언스와 앤서니 앤드루스였다. 그 뒤, 곧 영화로 만든다는 소문만으로 20년을 보내고 제법 구체화된 소식 속에는 폴 베터니와 주드 로의 캐스팅 뉴스가 있었다. 결국 <킨키 부츠>의 줄리언 재롤드 감독은 벤 위쇼와 매튜 굿을 브라이즈헤드로 불렀다.
벤 위쇼는 <아임 낫 데어> 시절보다 살이 더 빠져서 이젠 낭창낭창의 수준을 넘어 휘청휘청. 버들강아지 같은 몸으로 새끼손가락을 세우고 샴페인을 마시고 다리를 두번 꼰 채 물새알의 껍질을 꼼꼼하게 벗겨낸다. 그가 연분홍 셔츠에 페이즐리 스카프 타이를 매고 웃거나 파란색 클럽 재킷에 챙이 말려 올라간 보울러를 쓰고 손을 흔들 땐 너무 예뻐서 어쩐지 위태롭다 싶더니, 결국 이 우아하고 아름답고 은밀한 스토리는 예상대로 종결된다. 영화에서 줄곧 세바스찬의 기분을 드러내는 도구는 옷이나 꽃, 파이프 담배와 샴페인보다 곰인형이었다. 그가 술에 취해 우는 날이 길어질수록 테디 베어는 처음의 묘한 듯 도도한 자태를 잃고 그저 더러운 인형으로 전락한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모로코 장면에서 병약한 새처럼 변한 벤 위쇼보다 더 슬픈 건 지저분한 돌바닥에 엎어져 있던 곰인형의 엉덩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