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절반에겐 있고 그 나머지에겐 없는 것. 오해와 편견에 둘러싸인 대표적인 이름.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첫숨을 몰아쉬기 전 통과해야만 했던 신성한 무엇. 버자이너. 이제 와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화제작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내용을 설명하는 건 의미없는 일일 것이다. 200여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해 써내려간 이 공연을 직접 관람한 이라면, 그러나 앎과 경험은 같지 않다고 힘주어 대답하지 않을까. 이 연극의 시적이면서도 통렬한 대사를 완벽히 암기한다 한들 옆 좌석을 채운 이들을 의식하면서 금기의 단어를 되풀이 토해놓는 배우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건 확실히 다른 차원의 의식이다.
본디 모노드라마로 구상됐으나 초연의 ‘트라이어로그’ 버전 탓일까, 우리에겐 여배우 세명이 나란히 출연하는 형식이 더 익숙하겠다. 2009년 찾아든 이 공연에선 초연에도 출연한 이경미를 비롯해 최정원·전수경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조금 친숙한 접근법으로 토크쇼 형식을 차용했겠지만 그녀들의 카리스마가 작은 극장을 가득 채우고 마침내 눈물로 잦아들 때면 너무도 고통스러워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어질 것이다. 원작자 이브 엔슬러가 덧붙여달라 친히 부탁했다는 출산에 대한 시가 마지막을 장식하고, 배우들은 정성들여 안녕을 고한 뒤 사라진다. 당신의 상상과 달리 이 연극은 변화하라, 세상을 바꾸라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7살 소녀부터 70살 할머니까지 끔찍하거나 행복했던 여성의 삶이 배우의 몸짓과 목소리, 나아가 그들의 인생에 스며들어 흘러내릴 뿐이다. 그리고 그 파문은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비밀스러운 시간을 공유한 모든 관객에게로 아프게 파고든다.
“그녀의 질이 열릴 때 나 거기 있었다. 모든 것을 내놓고 잘리고 부어오르고 찢긴 채 피 흘리고 있는 그녀의 보지를 바라보았다. 피 흘리고, 또 피 흘리며 우리를 이 힘들고도 경이로운 세상과 만나게 했다. 나는 기억한다. 우리 모두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