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는 뼈가 되고 붉은색 액체는 피가 되었다. 유리로 된 몸통에 작가가 숨을 불어넣자, 비로소 ‘인체 조각’이 탄생한다. 벨기에 출신 아티스트 로랑스 데르보의 작업 과정은 인간의 몸이 생성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그녀는 작품을 만들 때마다 불에 달군 유리 속에 인간의 숨을 불어넣는 ‘취입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작품 속에 자신의 흔적을 담는다. 데르보가 인공적으로 만든 유리 인체와 그 안에 봉인된 그녀의 숨이 만날 때, 인간의 살아 있는 몸과 데르보의 인공 신체는 한 공간에서 조우하게 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이 로랑스 데르보가 추구하는 예술이다.
3월1일까지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로랑스 데르보의 첫 한국 개인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은 <Human Fluids>와 <37분 동안 인체에서 축출된 혈액의 양> <HUMAN LIQUID> 등 모두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모두 인간의 신체를 주제로 한 작업들이다. 데르보의 작업이 내포한 철학적 의미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작품은 꽤 흥미롭다. 정교하게 세공된 유리와 그 안에서 루비처럼 반짝이는 액체를 보고 있으면 인체의 숭고함에 대해 저절로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