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몇년 전, 한 여자가 자신의 전시회 첫날 콧수염을 그린 채 나타났다. 그건 관습에 대한 도전이자 좀더 오래도록 자유롭고 싶다는 다짐의 다른 표현이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여자의 콧수염은 앞으로 그녀가 어떤 작가가 될 것인지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그려넣은 콧수염만큼 뻔뻔하고 자유로운 작가였다. 인테리어를 의뢰받은 VIP 라운지를 친구들에게 빌린 들쭉날쭉한 가구로 채웠고(<VIP 학생회>, 2001), 생전 디스플레이쇼라고는 열어본 적이 없는 디자이너 서상영을 데려다가 미술관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믹스맥스>, 2004).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열 때는 찾기 힘든 인천 부둣가 폐가에 전시장을 꾸려놓고는 관객이 기어이 물어물어 찾아오게 만들었다(<사동 30번지>, 2006). 그런 여자를 평단은 ‘신유목민’이라 불렀다. 조각, 비디오, 설치를 아우르는 폭넓은 작업 범위와 한곳에 머무르지 않은 채 전시 공간에 맞춰 전세계를 누비는 그녀의 활동반경을 고려한다 해도 ‘유목민’이란 표현은 여자에게 참 잘 들어맞는 옷이었다.
하지만 유목민이 그렇듯, 여자는 한국 미술계에서 언제나 타자의 위치에 있었다. 독일 경제지 <카피탈>이 발표한 ‘세계 100대 미디어설치작가’ 리스트에 한국인으로는 설치작가 이불과 단둘이 이름을 올렸으며, 뉴욕현대미술관(MoMA) 관장 캐시 할브라이시가 주목하는 작가로 꼽을 만큼 해외 인지도가 높지만, 그 인지도에 비해 한국으로 들려오는 그녀의 소식은 드물고 미미했다. 1994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독일로 유학을 가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한 데에도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에 대한 한국 미술계의 뒤늦은 주목은 좀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2008년 12월23일, ‘미술 올림픽’이라 불리는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을 대표할 개인전 초대작가로 여자의 이름 석자가 드높이 울려퍼졌을 때, 몇년 전 그녀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좀더 자유롭게 오래도록 똘아이로 남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설치작가 양혜규, 그녀는 똘아이로 살아남는 데 성공했고 2009년 한국 미술계는 양혜규의 똘기에 힘입어 올해 6월7일 개막하는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올해 더 자주, 오래 불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