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은 “졸라, 건투를 빈다”고 했다. 그닥 고맙지가 않았다. 김어준이 쓴 책 <건투를 빈다>에서 수많은 고민상담에 응하는 그의 답변은 크게 두 가지 정도다. “본인 스스로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알아야 한다”, “기회비용을 따져서 선택해라, 물론 결과는 당신 책임이다”. 세상만사 모든 희로애락이 자기 탓이라는 거, 왜 모르겠나. 알지만 어쩌지 못해 답답하니까 상담한 건데, 또 같은 이야기네. 그래서 왠지 ‘건투를 빈다’는 응원이 공허했다. 자신도 약해서 강한 척을 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두 가지 답변이 그가 세상과 맞설 때 내놓는 두 가지 무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굵지 않고, 날카롭지 않은 무기라도 무기가 된다면, 무기는 무기다. 그런 무기라도 가지고 있다면 부러울 수밖에 없다. 또 그렇게 두 가지 무기만 장착한 그가 갖고 있는 세상에 대한 공포는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혹시 그도 누군가 건투를 빌어줘야 할 사람은 아닐는지. <딴지일보> 총수가 아닌 ‘야메상담가’ 김어준을 만났다.
-요즘은 뭐하고 지내나. =일단 라디오는 오래전에 잘렸다. 라디오 진행하고 글쓰고, <딴지일보> 일하면서 최근 몇년을 보냈는데…. 라디오 잘리고, <딴지일보>에 들어오던 광고도 엄청난 규모로 축소되고, 그러고 나니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책도 썼지 않나. (웃음) 책을 내니까 할 일이 많더라. 온라인에서 작가와의 만남 이런 것도 했고, 지금처럼 인터뷰도 하고. 요즘은 <딴지일보2.0>을 구상 중이다. 이제는 휴대폰이 휴대PC나 마찬가지인 시대 아닌가. 여기서 그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커뮤니티나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보려 한다.
-지금 정도의 사회라면 <딴지일보>도 재기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럴 수 있지. 문제는 돈이다. (웃음)
-하지만 미네르바처럼 자칫 걸려들어갈 수도 있는 시대다. 활동이 쉽겠나. =글쎄 뭐, 잡아갈 정도면 성공한 거겠지. 미네르바 때문에 요즘 토론 초청도 많이 받는다. 미네르바를 잡아가는 것을 보면서 애들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더라. 미네르바 때문에 이 정권이 안 써도 될 20달러를 더 썼다는데, 정말 그렇다면 안쓰러울 수밖에 없는 거다. 이 싸움은 인터넷에서 자기 이름으로 자기 공간에 글쓰는 사람이 국가하고 싸우는 것 아닌가. 국가가 그를 잡아가면서 이놈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를 강조하려고 20억원 어쩌고 하는 거다. 그런데 이걸 역으로 생각하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쓴 글 때문에 국가가 그 정도로 휘둘린 것 아닌가. 이건 자기들 용량이 이만큼이라고 자백하는 거다. 정상적인 정부였다면 100억원을 썼어도 못 잡았을 거다. 가오 안 사니까. 쪽 팔리니까. 하지만 그것까지 살필 여력도 없고, 지성도 없는 거지. 그러니 안쓰럽다.
-주변에서 이럴 때 짖어야지 뭐 하냐고 독촉하지 않나. =그런 이야기도 한다. 그런데 글 한두줄 쓴다고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공권력으로 한두 사람 잡아가봤자 해결이 안된다는 걸 그들이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딴지일보2.0>을 생각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MB 욕하는 것도 재밌는 일이나, 혼자 딸딸이가 되기 십상이니까.
-<건투를 빈다>가 꽤 잘 팔린다. 덕분에 상담이 더 많이 들어올 것 같다. 누구에게나 상담이 절실한 시대이기도 하고. 어떤 상담이 제일 많이 들어오나. =언제나 제일 많은 고민거리는 연애다. 어떻게 해도 자기 맘대로 안되는 거니까. 재밌는 건 최근 몇년간 연애상담 패턴이 바뀌었다는 거다. 이를테면 “저 남자가 나를 사랑하는 걸까요?” 이런 고민은 몇년 전만 해도 여자들이 상담하던 고민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저 여자가 날 사랑하는 건가요?”라고 묻는 남자들의 메일이 많아졌다.
-왜 그런 것 같나. =사연들을 보면 자잘하다. 손을 잡으면 빼지는 않는데, 더이상 뜨거운 반응이 없어서 몇 개월째 손만 잡고 있다든지 이런 식이다. (좌중 웃음) 말하자면 자기가 보기에 아직 공식 연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거다. 노력했으니까 이제 물증과 확증을 얻을 때인데, 그걸 왜 안 내놓냐고 고민하는 거다. 그런데 사실 이게 얼마나 답답한 질문인가. 손잡았는데, 여자가 가만히 있는 게 반응이지. 무슨 콘돔을 헤어밴드로 묶고 침을 막 뿜어줘야겠나. (웃음) 내가 볼 때는 낭만적인 연애의 시대가 이제 끝난 것 같다. 돌쇠들이 멸종하고 있다. 한때는 강하지만 부드러운 남성, 말하자면 기사도 같은 매력을 가진 남자를 최고의 남자로 여겼다. 그래서 연애란 모름지기 남자는 일방적으로 들이대고, 여자는 수줍은 듯이 취사선택하는 거였다. 모든 영광은 그대가 가지시오. 모든 자존심도 그대가 가지시오. 저는 오로지 들이대겠소. 이런 거지. 그런데 이제는 남성들이 밀고 당기기를 한다. 뻐꾸기를 던지기 전에 도주로 확보가 우선이다. 어떻게 보면 이게 수컷의 진화인데, 그래도 인문학적으로 성숙한 마초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말하자면 네오마초지.
-그럼 본인 연애는 돌쇠형으로 하나. =당연히 돌쇠형이다. 생겨먹은 게 그래서 그렇다. 어쨌든 최소한 연애에서만큼은 세련된 마초들을 북돋아야 할 것 같다. 추성훈이 왜 인기가 있었겠나. 갑자기 남자가 나타난 거거든. 여자들도 그런 남자를 모르고 살아온 거다. 남자답다는 건 곧 무식하다는 건 줄로만 알았는데, 세련된 수컷이 나타났네. 그 조합이 불가능한 줄 알았는데. 여자들도 그동안 같은 결핍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본인도 그런 세련된 수컷이 되려고 노력 중인가. =나는 원래 그렇다고 본다. 우하하하.
-본인은 누군가에게 상담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나. =그런 적 없다. 고민이 없거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책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그냥 생겨먹은 대로 살자는 주의다. 그래서 남의 도움이 필요없는 거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다 풀리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상담을 해주고 나서 반박을 받은 적은 없나. =의외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하는 상담이 일대일이 아니라 질문은 사적으로 오더라도 일반적인 고민들을 선별해서 상대한다. 의뢰자 말고도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특별히 반박을 받은 적은 없다. 아, 한번 메일이 온 적이 있다. 남자친구를 뜯어고치고 싶다고 해서, 내가 ‘나쁜 년’이라고 했는데, 자기는 나쁜 년이 아니라더라. 그런 경우 빼고는 다들 상담 형식을 감안해서 읽어주는 것 같다.
-고민을 털어놓은 이들을 ‘찌질이’로 규정한다는 반응도 있다. =상대를 모르는 상태에서 짧은 질문만 가지고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겠나.
-“너가 욕망하는 대로 살아라”, “기회비용을 고려하고 선택하는데, 결과는 너가 책임지는 것이다”라고 하는 답변이 많다. 그런데 사실 그게 정말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상담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많을 거다. 뭐가 맞는지는 알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도 있고, 그러자니 비용이 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항변의 베이스에는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돈이냐 사랑이냐 이런 질문을 하는데, 모피 입으면 남편이 늦게 들어와도 상관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꾸로 다이아몬드로도 만족이 안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남들은 어떤가만 궁금한 거다. 사람에게는 죽을 때까지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첫 번째로 반응하는 건 “왜, 내게만…”이다. 해결방법을 찾는 데 집중하지 못한다. 스스로 맞서야 하는데,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거다. 그래서 그런 항변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상담을 받다가 화난 적은 없나. =짜증난 적은 있다. 아까 말했듯이 별 반응이 없어서 손만 잡고 있다는 식의 고민, 이런 경우 짜증난다. (웃음) 이런 경우도 있다. 어떤 남자는 요즘 몸짱이 대세라서 매일 운동을 하는데, 퇴근하고 운동을 하면 너무 피곤하다는 거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좋아하니까 어쩔 수가 없단다. 그러고는 나 이거 계속해야 하냐고 묻는다. 우하하하하. 한번도 온전하게 자기가 결정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인 거다. 이걸 누가 답해주나. 그냥 똥배가 나오더라도 행복하게 살든지 힘이 들어도 운동하든지 여자친구랑 헤어지든지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런 유의 질문이 정말 많다.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늘어놓는다. 내 생각에는 부모가 대신 시간낭비없이 최선의 선택을 골라주고 거기에 따라가다 보니 생겨난 패턴 같다. 이런 경우 그렇게 선택한 결과를 감당하기가 어렵다. 일단 남 탓을 하고 보는 거지.
-공통적으로 볼 때 현재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맞다. 상담을 받다보면 여자들은 유기공포가 있다. 내가 붙인 말인데,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다. 이 남자가 ‘먹튀’ 아닐까 싶은 거지. 그런 공포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런가 하면 남자들은 거절공포가 있다. 여자에게 접근했는데, 이 여자가 나한테 ‘노’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다. 남자는 대부분 섹슈얼 코드를 담고 여자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헤어스타일이나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남자 입장에서는 “니 X지는 나빠”라고 듣는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거지.
-책에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담았다. 자신이 왜 이런 상담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듯했다. 그런데 가족 이야기는 있어도 연애나 직장생활에 대한 본인 경험담은 없더라. 포스코에서 6개월간 직장생활을 했는데, 어떻게 일했나. 조직에 적응하는 모습이 선뜻 그려지지 않는다. =신입사원이 할 일이 없었지. 팩스 받고 문서 정리했다. 그런데 팩스 받고 복사하고 저녁때 같이 술만 먹어줘도 돈을 너무 많이 주는 거다. (웃음) 칼퇴근해, 돈 많이 줘. 가서 할 일 없어. 이런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때가 강남 포스코센터가 처음 생겼을 때였는데, 얼마나 폼났겠나. 내가 있던 부서가 해외영업팀이었는데, 거기는 더더군다나 할 일이 없었다. 포스코가 해외영업할 게 뭐 있나. 가만히 있어도 사러오는데. (웃음) 그런데 이 회사는 부장, 이사, 이런 양반들이 자기 나름대로 그 안에서 무게잡고 질서유지하는 게 강했다. 나는 그런 위계가 가소로워 보이더라. 너무 웃기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새벽 3시가 넘도록 회식을 했는데, 이사가 하는 말이 내일 아침 일찍 나오라는 거다. 신입사원이니 아침 7시에 출근했지. 그런데 이 사람은 6시에 와 있는 거다. 미친 거지. (웃음) 자기는 이 정도 규율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볼 때는 미친 것처럼 보였다. 평생 저러고 살았을까. 여기에 자기 인생을 걸고 사는 게 삶의 낙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잘난 척해봐야 할 일이 없어도 월급 많이 주면 그렇게 될 것 같더라. 그런 위기감이 든 거지. 만약에 바쁘고 힘들었으면 계속 다녔을지 모른다. 만날 시간이 남으니까, 딴생각을 했던 거지. (웃음) 그래서 관둘 수밖에 없었다.
-직장 내 경쟁자나 상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내가 겪지는 않았으나. 구경꾼의 자세여서 오히려 잘 보였다. 내가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안했으니까. 수컷은 원래 정치적이다. 들어가자마자 대장이 누군지 파악하고 그 안에서 힘의 역학관계를 알아차린다. 어느 줄에서야 먹이를 얻을 것인 파악해야 하니까. 나는 그런 자세가 될 필요가 없었다. 돈이 급한 것도 아니고, 먹고 사는 게 다급한 것도 아니었다. 그랬다면 힘의 역학관계 같은 건 보이지 않았겠지. 관망하며 쳐다보니 얘는 얘 줄인가보다, 둘이 싸우나 보네, 얘는 이사줄이 못됐네 이러고 있었던 거지.(웃음)
-친구관계는 어떤가. 사람에 집착하는 편은 아닐 것 같다. =그런 강박은 없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건 좋아하는데, 흔히 남자들끼리 모여서 술먹고 2, 3차 가는 거는 안 좋아한다. 여자하고는 그렇게 마시겠지. (웃음) 남자들이 술먹으면서 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허세고, 다른 하나는 한탄이다. 물론 그 다음에는 섹스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한탄을 늘어놓지도 않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아주 친하게 지내는 관계는 제한적이다. 술 한잔 마시거나, 차 한잔 하면서 할 이야기하고 다음에 보자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전부다.
-그래도 당신이 나름대로 느끼고 있는 공포는 있지 않나. =당연히 있겠지. 인간인데. 2, 3년 전부터는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한테 피해 안 주고 깔끔하게 죽고 싶다. 팔다리 다 끊어져서 다른 사람이 청소하기 힘들게 하지 말자, 그리고 묘를 만들지도 말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다. 그냥 어느 날 TV에서 수목장을 봤는데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 살을 나무에게 주면 나무가 먹고 자라서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게 좋아 보이더라. 이게 공포까지는 아니어도 잘 못 죽으면 안되겠다고는 생각한다. 죽는 건 내 마음대로 안되지 않나. (웃음)
-본인이 직접 나서서 상담을 해주고 싶은 사람은 없나. =이명박이지! 이명박은 고민이 없다는 게 문제다. (웃음) 나는 그 사람 자체가 증상이라고 본다. 그에게는 감정이입 능력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이 어떻게 느낄지 상상할 수 없는 거다. 이런 능력이 있어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건데, 이 양반은 그런 게 없다. 정확한 본질을 이해하고 하는 말이 없지 않나. 항상 붕 떠 있다. 사이코패스 같다고 할까. (웃음)
-그렇게 진단한다면 상담이 되겠나. =내가 상담한다고 해서 그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유일한 상담은 때려야 하는 거 아닐까. 우하하하 어쨌든 이 문제는 전문가가 나서줘야 한다. 나는 야메라서 잘 모르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