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의 모자를 쓴 가장 아름다운 붓이다.”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레통은 스페인 출신의 예술가 호안 미로를 이렇게 정의했다. 화려한 색채와 대담한 곡선을 사용해 풍요로운 상상력을 화폭에 펼쳤던 호안 미로는 초현실주의가 막을 내린 194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건재했던, 브레통의 표현대로 가장 아름다운 붓이었다. 하지만 미로의 재능은 회화에만 있지 않았다. 그는 판화와 세라믹, 대형 입체물 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후기 작업의 대부분을 이러한 요소들로 채웠다. 2월22일까지 성남아트센터 미술관에서 열리는 <호안 미로-최후의 열정전>은 호안 미로의 판화 103점을 공개한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최초의 사설 미술재단이자 미로가 전속 작가로 활동했던 매그 재단의 첫 아시아 전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프랑스의 문인 자크 프레베르와 공동 작업한 석판화 <아도니스> 연작 20점이다. 호안 미로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완벽한 작품을 만든다”고 프레베르를 추어올렸지만, 그 자신도 작품의 제목으로 종종 짧은 시를 지을 만큼 운문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제비는 몬트로이그 근처 하늘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검고 커다란 구름과 상반되는 여성새이다’란 제목은 얼마나 시적인가!) 미로와 프레베르는 아프로디테의 연인이었던 아도니스의 신화를 각각 선과 단어로 희롱하는데, 이들의 작업에는 남녀의 사랑에 대한 찬양, 여인에 대한 경배, 유머와 익살이 표현돼 있다.
미로 특유의 환상성과 추상성이 극대화된 <지옥의 형벌> 연작도 주목할 만하다. 모두 32점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는 판화에 나열된 기호들이 문득 곤충과 세균으로 보이는, 놀라운 착시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미로의 의도적인 설정이자 그가 초현실주의 진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장점이기도 하다. “내 그림에서 최초의 단계는 자유이고 무의식이다. 그러나 제2단계에서는 주의 깊게 계산되어 그려진다”는 말처럼 초현실주의자 호안 미로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히 무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을 구체적인 현실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이번 전시를 주관하는 매그 재단과 호안 미로의 깊은 인연 또한 흥미롭다. 미로는 1948년 파리에 위치한 갤러리 매그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데, 이때 전시 에이전트를 맡았던 아이메 매그- 매그 재단의 설립자- 와 인연을 맺은 뒤 죽을 때까지 매그 재단과의 인연을 이어나갔다. 이들은 화랑과 작가를 넘어선 가족 같은 사이였다. 매그 재단의 이사장 요요 매그는 미로가 세라믹으로 만든 갤러리 안에서 그의 작품과 함께 성장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을 털어놓기도. 관람료는 성인 7천원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문의: 031-783-8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