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새 카메라를 장만했다. 이름하여 올림푸스 PEN FT. 기계에 대한 애착이 전무한 내 눈에도 제법 예뻐 보이는 필름카메라다. 가죽 케이스에 둘러싸인 보디는 날렵하면서도 튼튼했고, 가느다란 셔터는 윙크하듯 애교있었다. 호기심이 일었다. “그런데 나이가 몇살이래?” “1960년대 말, 일본생이야.” 그가 자랑스레 대답했다.
사진가 커뮤니티의 중고장터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는 그 카메라는 지난 크리스마스 바람이 거센 서울의 거리에서 입양됐다. 전날 과음을 한 탓인지 술 냄새를 폴폴 풍기던 전 주인은 꽤나 여릿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했다. 그 청년이 이베이에서 카메라를 구입했으니 전전 주인은 미국에 사는 누군가일 확률이 높았다. 깜찍한 외모에도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이 카메라는 적어도 네 사람의 손을 거친 셈이다. 태평양 너머, 카메라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쇳덩이를 깎고 다듬고 조였던 이들을 포함해.
그 사람들, 아직까지 살아 있을까. 카메라의 운명을 거슬러가다 보니 그를 만든 이들이 궁금했다. 살아 있지 않다면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맞았을까. 비밀스러운 연인 혹은 지키고픈 친구 하나쯤은 있었을까. 아이는 몇이나 낳았을까. 혹시 평생 혼자였을까. 왼손잡이였을까, 오른손잡이였을까. 작업할 땐 음악을 들었을까, 아니면 라디오를?
상상에 상상을 이어가다 문득 지금까지 발행된 <씨네21>들의 발자취가 또 궁금해졌다. 대개 창고에 처박혀 먼지만 먹고 있거나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돼 새 삶을 찾았겠지만 어느 유별한 아이는 혈기왕성한 여행가와 함께 방랑길에 오르지 않았을까. 그가 가방을 도둑맞는 바람에 결국 유럽의 작은 술집에 굴러들었을지도 몰라. 무심한 주인이 깨진 유리창 위에 턱 하니 붙여놨을지도. 어쩌면 쌀쌀한 저녁 걸인의 손을 녹이는 모닥불로 변신했을 수도 있겠지만.
40년 뒤 이 잡지를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을까 아무도 상상하지 않는다 해도 매주 내 생각이 담긴 무언가가 태어난다는 건 정말로 기쁜 일이다. 세상에 없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순수한 즐거움. 새삼스레 이런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저의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편집팀에서 1년을 보내고 취재팀으로 되돌아가지만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 말하고 싶어서라고 답하련다. 작고 보잘것없을지언정 <씨네21> 어느 모퉁이에는 틀림없이 내 체취가 남아 있을 테니, 앞으로 더욱 분발하겠다는 조금은 뻔한 약속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