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3일,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서 박정석 선수와 김택용 선수가 맞붙었다. 스타리그 10년 역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선수의 대결이었다. 둘은 이전에는 한번도 맞붙은 적이 없다. 1983년생인 박정석과 1989년생인 김택용의 전성기가 서로 달랐던 까닭이다. e스포츠계로 치면 이미 ‘노인’ 취급당할 나이인 박정석이 김택용과 맞붙을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공군ACE라는 프로게임단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게임단을 통해 몇몇 프로게이머가 자신의 특기를 살리며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사실 경쟁논리로만 따지자면 박정석은 그의 동갑내기 프로게이머들처럼 은퇴하거나 코치가 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징병제가 있고, 그 징병제의 틀 안에서 공군ACE라는 제도가 생겨났고, 박정석이 그 안에 소속하면서 나는 박정석과 김택용이 맞붙는 장면을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도 보게 되었다. 이건 좀 특이한 일이다. 원래 군대는 로망을 주기보다는 뺏어가는 공간이다. 많은 한국 남자들, 특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군대 탓’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영화 하는 형들은 이번에 재밌게 본 외국영화의 감독이 자신보다 어리다고 한탄하면서 “이 모든 것이 다 군대 탓이다”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댄다. 이랬던 군대가 스타리그로 오면 ‘로망 제조기’가 된다. 20대 중반이면 전성기가 끝나는 e스포츠의 특수성이 낳은 작은 에피소드랄까? 비록 이 대결은 박정석의 허무한 패배로 끝났지만, 그는 적어도 몇번은 팬들을 소리지르게 할 것이다. 한때 찬란하게 빛났던 예전의 것들이 다시 한번 불타오르는 광경을 보는 것만큼 숨 막히게 감격스러운 일은 없으니까.
박정석과 동갑인 나는 그와 사정이 다르다. 그가 정점을 찍었다면 나는 데뷔도 하지 못했다. 내 소개는 ‘인터넷 논객’으로 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는 차라리 키보드 워리어라는 호칭을 선호한다. 그건 논객이란 말에 깃든 낭만주의를 벗어나 있는, 특정한 행위를 통해 어떤 부류의 사람을 설명하는 객관적인(?) 호칭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키보드 워리어라 부를 때는 또 다른 감상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미네르바 현상’과는 별개로 키보드 워리어들의 전성시대(?)가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키보드 워리어는, 게시판이 네트를 구성하는 주도적인 형식일 때 가능했던 어떤 존재의 방식이었다. 포털과 블로그 그리고 아고라의 세상에서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렇게 하나의 세계를 잃어버린 내게 느닷없이 주어진 것이 이 지면이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역시 ‘올드게이머’와 비슷한 감상을 준다. 내가 이 지면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십여년 전, 어느 병원에서 진료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때 이 지면은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을 두고 대한민국이 ‘동물의 왕국’의 룰을 따르고 있다고 질타하는 김규항의 글을 싣고 있었다. 영화 잡지의 맨 마지막 면에 실리는 다분히 정치적인 글들은 전체 잡지의 맥락과 별개로 묘한 체취를 풍기는 듯했다. 하지만 그 독립의 아우라는 또한 폐쇄성의 장애로 작용하기도 한 것일까. 한때 찬란하게 빛났던 이 지면을 과분하게 맡게 된 나로서는, 유토디토가 개편에서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것들은 이제 자신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복한 것이다. 철지난 키보드 워리어가 사라져가는 유토디토를 추억한다. 박정석과 <씨네21>의 행복한 미래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