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동안 댓글가에서 가장 인기를 모은 방송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인터넷 포털 ‘다음’의 협조를 받아, 방송·연예 전문 게시판인 ‘텔레비존’에 가장 많은 댓글이 올라온 프로그램을 꼽아보았다.
1위는 MBC 드라마 <이산>이다. <이산>의 댓글은 초반엔 정조(이서진)와 성송연(한지민)의 애틋한 사랑을 꼭 이루어달라는 바람이 주를 이뤘지만, 드라마 후반 정약용(송창의)이 등장해 좌충우돌 사고뭉치로 그려지면서 게시판이 후끈 달아올랐다. 누리꾼은 그에게 ‘정초딩’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우리 약용이’라 부르며 몹시 귀여워(!)했더랬다.
2위를 차지한 <베토벤 바이러스>(MBC)와 5위인 <바람의 화원>(SBS)은 게시판에 누리꾼의 예술적 감수성이 흘러넘쳤던 드라마들이다. 강마에와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똥.떵.어.리’ 동영상 패러디로 댓글가에 한 줄기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뒤 안으로는 드라마에 삽입된 클래식 음악의 제목을 공유하고 밖으로는 연주장면 동영상을 퍼날랐다. 음악 전공자들이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하는 악기와 연주법, 용어 및 곡 해설에 전념하는 사이, 미술 전공자들은 <바람의 화원>을 패러디한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을 선보였다. 기념 티셔츠를 디자인하고 도화서 문양을 낙관으로 만들어 나눠 갖는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됐다.
올 한해 드라마를 사랑한 누리꾼은 <일지매>(4위)를 보며 ‘파문놀이’(예: 인조 “난 MB를 벤치마킹 했다” 파문)를 즐겼고, <쾌도 홍길동>(6위)과 함께 ‘멍청이놀이’(모든 말을 ‘멍청이’로 끝내는 놀이)를 했으며, <에덴의 동쪽>의 무수한 등장인물을 소재로 ‘짝짓기놀이’에 심취했다.
올해 드라마 시청률 순위에선 찾아볼 수 없는 <태양의 여자>(7위)의 독특한 재미를 먼저 알아보고 “본방 사수”를 외쳤던 누리꾼이지만, <너는 내 운명>(10위)의 가혹하리만치 뒤틀린 설정에 대해선 “막 나가는 드라마”, “다중인격 새벽”이라는 악플을 서슴지 않았다. 지금 <뉴하트> 게시판에는 지난 12월15일 세상을 떠난 배우 박광정을 추모하는 글들이 줄을 잇는다.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의 게시판이 붐비는 건 당연하지만, 시청률과 댓글 수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시청률 집계 기관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가 발표한 2008 시청률 상위 10개 프로그램과 ‘텔레비존’ 댓글 수 상위 10개 프로그램 중 겹치는 것은 <이산>과 <뉴하트> <너는 내 운명>뿐이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는 일일극이나 주말극이고, 게시판이 붐비는 드라마는 주중에 방영되는 ‘미니시리즈’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경우, <일요일 일요일 밤에-우리 결혼했어요>는 시청률 상위 5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댓글 수에선 단연 1위로 꼽혔다. 텔레비전 시청층이 점차 고령화된다는 또 하나의 방증이 아닐까. 안녕, 우리가 열렬히 사랑했고 잘근잘근 씹었던 2008년 방송 프로그램들이여!
다음 ‘텔레비존’ 댓글 수 순위
드라마 부문 1. <이산> 2. <베토벤 바이러스> 3. <뉴하트> 4. <일지매> 5. <바람의 화원> 6. <쾌도 홍길동> 7. <태양의 여자> 8. <온에어> 9. <에덴의 동쪽> 10. <너는 내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