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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누 리브스의 <지구가 멈추는 날> 공개
김도훈 2008-12-22

일시 12월 19일(금) 오후 2시 장소 용산 CGV

이 영화 뉴욕 센트럴 파크에 떨어진 거대한 미확인 물체가 떨어지고 그 안에서 나타난 정체 불명의 한 남자가 나온다. 이 남자는 수세기 동안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을 멸하기 위한 거대한 공격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 남자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이러한 공격을 감행 하려는 것인지, 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한다. 이렇게 국가의 모든 전력이 투입되어 그의 수수께끼를 파헤치고 있는 사이, 지구를 향한 공격이 시작된다.

100자평

50년대에 가능했던 원작만의 기묘한 아우라를, 21세기에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세상은 너무 복잡해졌고 사람들의 마음도 미묘해졌다. 그러니 <지구가 멈추는 날>을 리메이크하고 싶다면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했다. 외계인의 지구 침공에 색다른 의미 부여를 하거나, 슬쩍 비틀거나 했어야 한다. 아니면 지구인의 대응이나 상념을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구가 멈추는 날>은 원작을 답습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결국 심심하고, 지루할 뿐이다. 사실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 기대한 것은 딱 하나였다. 외계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부서지고 무너지는 지구 문명을 보는 것. 하지만 그것마저도 하지 않는다. 고트라는 로봇은 나와서 하는 일이 거의 없고, 도시가 파괴되는 모습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블록버스터로서도 <지구가 멈추는 날>은 낙제점이다. 주제의식은 더욱 식상하고. 키아누 리브스에게는 표정 없는 외계인이나 슈퍼히어로가 어울린다는 사실만 상기시켜줄 뿐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거두절미하고, <지구가 멈추는 날>의 제작진이 원작의 세계관을 혁신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킬만한 두뇌 용량을 가지지 못했다면, 최소한 침공과 멸망의 스펙터클이라도 제대로 만들어내야 했다. 놀랍게도 <지구가 멈추는 날>은 그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유아적인 시나리오와 키아누 리브스의 발연기(역할이 외계인이라는게 더이상 변명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8천만달러짜리 블록버스터로서는 믿을 수 없을만큼 빈약한 시각효과가 멋지게 어우러졌다. 내년도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을 노려볼 만 하다. 김도훈 <씨네21> 기자

 <지구가 멈추는 날>은 동명의 1951년 영화의 리메이크 작이다. 영화는 50년도 더 지난 원작의 틀거리를 변화된 세계관에 대한 고민 없이 그대로 가져온다. 그 결과 문제의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일단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인간을 멸해야 한다는 휴머니즘의 한계를 극복한 사고는 신선하다. 또한 외계인이 지구인의 대표를 만나려는 것을 차단하는 미군 당국에게 "당신들이 지구인을 대표하느냐?"고 반문하는 것도 미국 일방주의를 벗어난 인식으로 훌륭하다. 그러나 영화는 이 놀라운 사고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한다. 원작이 50년대 냉전의 분위기와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했던 것에 반해, 21세기 리메이크 작은 전지구적 제국정치에 대한 성찰을 담지 못한다. 이제 인류문명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것은 더 이상 종교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 정치의 담론이 되었음에도 영화는 뻔한 기독교로 함몰한다. 지구인 대표를 만나겠다던 외계인(키아누 리브스)은 UN총회가 거절 되자, '지구인 대표자'를 만나려는 노력을 더 이상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단 한명의 생태과학자와 짧은 담소를 나누고, 우주생물학자와 그녀의 의붓아들! 과의 관계를 관찰하는 것만으로 인류 절멸에 관한 결정을 뒤집는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인류를 절멸시켜야 할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을 자발적으로 깨닫고 지구 내부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온 환경운동가 한명이라도 만나야 하지 않을까? 대체 수십년 전에 침투하여 지구인에게 정이 들어버린 고정간첩(중국인)은 지구인의 절멸을 막기 위해 어떤 현실적인 노력을 해온 것일까? 원작에도 주인공은 예수를 연상시키는 인물이었지만, 리메이크 작은 노아의 방주나 등에떼 같은 구약의 메타포를 더하여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강화하고, 우주로부터 날아온 바람직한 메시지는 지구인들에게 전달될 길을 찾지 못한다. 영화는 타자를 일단 공격자로 간주하는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반대하는 듯한 외양을 띄고 있지만, 다시금 꼽씹어보면 어떤 정치체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내부 개혁자와의 연대를 통한 자발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외부의 무력에 의해 사태를 종식시키려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공습의 논리가 타당한 듯 설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선취한 문제의식을 따라기지도 못하고, 미국의 정치적/종교적 인식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정한 영화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