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돌아갈 구실을 찾은 것일까.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지난 12월3일 LA지방상급법원에 미국 검찰과 사법부의 위법행위를 이유로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혐의에 대한 기소를 취하해줄 것을 요청했다. 1977년 13살 미성년자와의 섹스스캔들로 프랑스로 도피한 그는 31년 동안 미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없었다.
<로만 폴란스키: 원티드 앤드 디자이어드>(미국에서는 수배(wanted) 중이고, 프랑스에서는 환대(desired)받는)라는 제목의 한 다큐멘터리가 시발점이다. 마리나 제노비치 감독의 이 작품은 ‘1977년 로만 폴란스키 섹스스캔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당시 미국 검찰과 판사간의 위법행위와 부적절한 의사소통이 있었음을 보여주면서 올해 초 선댄스영화제를 뜨겁게 달군 바 있다. 피고인을 위한 최소한의 상담과 법률규칙에 대한 상세한 설명없이 오로지 판사와 검사간의 대화로만 이루어지는 사법체계에 일침을 가한 것. 로만 폴란스키의 변호인단은 “이 작품은 미국의 사법 시스템이 어떻게 남용되고, 피고의 권리가 검찰과 판사에 의해 어떻게 유린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항소심에 착수했다. 또한 변호인단은 당시 피해자였던 사만다 게일리의 “그(로만)가 감옥에 가길 원하지 않는다”는 요구를 고려해달라고 사법부에 요청한 상태다.
로만 폴란스키의 미국 입국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TV로 중계된 ‘1997년 공판’을 비롯해 2002년 <피아니스트>로 오스카상을 수상했을 때도 그는 입국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사건이었기에 그의 발목을 30여년 동안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을까. 1977년 멀홀랜드의 잭 니콜슨 저택에서 그는 <보그> 화보촬영을 온 13살의 사만다 게일리를 만나 최음제가 섞인 샴페인을 먹이고, 그녀의 의사에 반한 성관계를 맺었다. 그 결과 폴란스키는 최고 50년까지 옥살이가 가능한 ‘미성년자 성관계’형을 선고받았고, 범죄자 인도협정이 적용되지 않는 프랑스로 도피했다.
<악마의 씨> <차이나타운>의 성공,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에 의한 아내 샤론 테이트의 죽음 등 할리우드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그가 과연 내년 1월21일에 열릴 공판에서 어떤 판결을 받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