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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레드 제플린과 13년
김용언 2008-12-12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처음 들은 건 갓 대학에 입학한 1995년 때였다. 고등학교 내내 이승환, 전람회, 패닉만을 듣던 내가 한살 위의 선배를 통해 레드 제플린, 도어스, 제니스 조플린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몇년 동안 신촌 술집들을 전전하면서 이곳의 단골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신청해서 나오느냐의 여부였다. 70년대 사람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레드 제플린의 공연을 직접 볼 수 있었으니! 언제나 지난 것은 더욱 탐스럽기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 레드 제플린은 1980년 드러머 존 본햄이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둔 다음 “본햄 없는 밴드는 아무 의미 없다”라며 해체를 결정했고, 이후 각자 솔로 활동을 지속해왔다. 이들의 ‘물리적인’ 공연을 볼 날은 영영 가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2007년 12월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 보컬 로버트 플랜트, 베이시스트 존 폴 존스, 그리고 존 본햄의 아들 제이슨이 드러머로 합류하여 자선공연의 일환으로 무대에 올랐다. 유튜브에서 그 공연의 짧은 클립을 봤더랬다. 로버트 플랜트의 얼굴은 쭈글쭈글했지만 카랑한 목소리는 점점 활기를 되찾았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지미 페이지는 여전히 입가를 앙다문 채 기타에 몰두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70년대로 돌아갔다, 라면 거짓말일 테지만 적어도 70년대의 그들이 어떠했을지는 능히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공연은 대성공이었고, 지미 페이지는 재결합에 대한 끊임없는 암시를 흘렸다. 팬들은 물론이고 언론 매체들의 흥분은 한껏 고조되었다. 하지만 최근 블루그래스 뮤지션 앨리슨 크라우스와의 합작 앨범에 몰두한 로버트 플랜트는 다시 한번 레드 제플린의 이름으로 재결합하는 것에 분명한 반대를 표했다. “때때로 다같이 모여 연주하는 건 그리 나쁘지 않겠지만….” 매체들은 존스와 페이지와 본햄이 새로운 보컬을 점검 중이라고 전하면서,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가 합류하네, 얼터 브리지의 마일스 케네디가 제2의 플랜트네 떠들었다. 현재까지 들려온 가장 따끈한 소식은, ‘아직까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뿐이다. 존스는 유감스러운 말투로 “우리는 정말 뭔가 하고 싶다. 로버트는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말이다. 그는 더이상 시끄러운 음악을 원하지 않는다. 우린 원한다”고 인터뷰했다. “하지만 잘될 거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트리뷰트 밴드가 되고 싶진 않다. 음반도 새로 작업할 거고 투어도 시작할 거다.” 그리고 로버트 플랜트가 빠진 이 새로운 팀은, 어쨌거나 레드 제플린이라는 이름을 쓰진 않을 것이라 한다. 그 옛날 본햄 없는 밴드는 필요없다면서 해체를 결정했을 때처럼 플랜트 없는 레드 제플린은 절절한 노스탤지어와 아쉬움이 뒤섞인 전혀 다른 결과물이 될 확률이 크다. 모든 멤버가 완벽하게 갖춰진 레드 제플린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앨리슨 클라우스와 함께 너무나도 부드럽게 노래하는 로버트 플랜트를 계속 지켜보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이젠 정말 새로운 레드 제플린(이라고 말해도 될지)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할 듯싶다(혹시 월드 투어할 때 한국에도 좀 와주신다면 평생 보은할 텐데…).

뜬금없이 레드 제플린 재결성 소식의 정리 버전이 되어버렸다. 요는 이렇다. <씨네21>은 1995년 창간됐고 올해로 13년을 맞았다. 그동안 이곳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들고났을까. 2주 전부터 <씨네21>에 입사한 나는 이곳의 내밀한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 이제 막 들어온 사람으로서 훌륭했던 기존 멤버들을 완벽하게 대체할 순 없겠지만, 곧 창간 14주년을 준비하게 될 <씨네21>의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겠다는 다짐을 이렇게 멀리멀리 에둘러 얘기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