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아웃백에 실크 언더웨어를 열심히 챙겨온 영국 귀족부인 새라 애쉴리는 새하얀 피부를 가진 니콜 키드먼에 적격으로 보였다. 그런데 웬걸, 카우보이 모자에 가죽바지를 입고 먼지를 옴팡 뒤집어쓴 그녀의 모습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키드먼은 <오스트레일리아> 촬영 중 극심한 고온으로 실신도 하고, 연기경험이 전혀 없는 초짜 아역배우를 설득해가며 연기하고, 또 덜컥 임신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영화를 통해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나. =질문이 뭐였지? 비행기를 오래 타고 온 터라 잘 안 들린다. (웃음) 생각을 바꿨다기보다는 탐험의 기회를 가졌다고 할까. 늘 호주 킴벌리 같은 북부지역에 가고 싶었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드디어 기회를 갖게 됐다. 여러 가지 경험을 했고 역사를 다시 발견했고, 오스트레일리아 다윈의 일본군 폭격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촬영 중에 일기를 썼다고 들었다. 임신 중이기도 했다고. =맞다. 일기를 썼다. 원래 출판할 생각이었는데 나중에 읽어보니 너무 사적이더라.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 내용 중 일부가 공개됐다. 개인적으로는 딸을 얻는 경험도 있었지만 가장 큰 선물은 이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다는 거다. 바즈와 다시 일할 수 있었다는 것도 좋았고. 여러모로 많은 것을 얻었다. 어릴 적부터 장대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사랑을 경축하는 이 작품을 만나 정말 기뻤다.
-아역배우 브랜든 월터스와 연기할 때 모성애가 무척 요구됐을 텐데. =브랜든과 나는 둘 다 수줍어하는 타입이라 처음 만났을 때 서로 방구석에 서 있었다. 어떻게 아이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특히 브랜든은 연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감정을 꾸미는 법도 몰라서 부드럽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리허설을 하면서 서서히 브랜든의 가족사나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가까워졌다. 촬영에 들어갈 때쯤에는 매일 볼 수 있어 무척 들뜨기도 했다. 브랜든도 나중에는 날 보면 뛰어와서 내 허리를 손으로 꼭 끌어안았다. 곁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브랜든한테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브랜든에게는 동갑내기 여자 형제가 있는데 어떤 때는 그녀가 브랜든의 대역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모두 무척 가까워졌다. 브랜든도 이제는 꽤 자라서 어린 청년이 됐지 아마도?
-아역배우와 일할 때 특별한 방식이 있었는지. =아이들과 함께 일할 때는 바즈가 이런 장면에 이런 연기를 해달라고 요구해도 그대로 연기하기가 힘들다. 순간 순간을 따라가야 할 때가 많다. 아이들은 힘들어하기도 하고, 한눈을 팔기도 하고 그러지 않나. 아이들과 일하면 수없이 많은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촬영하다가 재미없다며 캥거루 잡으러 뛰어가버리기도 하니까. (웃음)
-촬영환경이 무척 열악했다고 하던데. =평생에 한번 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출연 결심을 한 거다. 다시 하라면 아마 못할 거다. 사진으로 보도됐지만 스탭 전체가 작은 텐트에 의존해 살았다. 극심한 고온도 한몫을 했고. 보다시피 내 살갗이 희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2시간 반 동안 비포장도로로 차를 타고 가서야 촬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즈가 말한 대로 정말 터프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더라. 프로덕션·의상디자이너인 캐서린 마틴은 시대 배경에 맞게 모직과 가죽으로 의상을 만들었다. 그래서 하루는 그 의상을 입고 말 위에 앉아 있는데 어질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말을 다루던 조련사가 다행히 옆에서 날 받아주었기 망정이지…. 촬영 환경은 어려웠지만 배우로서 그런 실감나는 환경을 원하기도 했다. 내가 환경에 적응을 하는 것처럼 극중 나의 캐릭터도 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다시 그 환경에 가기는 힘들겠지. 그래도 그 경험만은 나한테 무척 소중하다. 사실은. 휴도 실신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