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어느 유명한 평론가로부터 영화를 한편 만들어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어느 지역 영화제에 ‘관객이 만드는 영화’라는 코너가 마련됐는데, 그 프로그램을 위해 5분짜리 영화를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워낙 시간이 없어 “올해는 곤란하고 내년에 하겠다”며 고사를 했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 영화제 자체가 흐지부지되어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덕분에 다행히 민망한 작품을 내놓았다가 공개망신을 당하는 봉변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제안을 받고 한동안은 정말 다음해에 무슨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때 생각했던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영구기관(perpetuum mobile)에 관한 영화였다. 어디서 들은 얘기인데, 지금도 특허청에는 거의 매일 영구기관을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출한 서류가 올라온다고 한다. 나름대로는 필생의 업적이라고 내놓는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모두 실현이나 작동이 불가능한 기계들일 것이다. 지구 위에 살면서 ‘에너지보존법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이론적으로는 전혀 가망이 없는 일.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불굴의 의지로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일까? 실제로 영구기관을 제작하는 사람을 찾아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포스터에는 중세의 장인 비야르 드 온쿠르가 양피지에 그린 ‘영구기관’(1230)을 사용하고, 배경음악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무궁동’(無窮動: perpetuum mobile)으로 하는 거다. 모든 구상이 끝났고, 남은 것은 영화의 결말. 짧은 영화이니 거기에는 당연히 극적 반전이 있어야겠지.
내 구상 속에서 결말은 다음과 같았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있는 한 영구기관의 제작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단 하나, 에너지보존법칙을 제거하는 것. 그리하여 두 사람은 에너지보존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가능세계, 즉 지구와는 다른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새로운 물리적 환경을 창조하는 일에 착수하기로 결의를 모은다. 한마디로, 물리학 자체를 다시 쓰기로 한다는 내용인데, 솔직히 이런 영화를 관객이 재미있게 봐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전위의 길은 원래 외롭고 고독한 길이 아니던가.
최근 이와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서울 메트로에서 지하철 송풍구 바람을 이용해 발전을 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송풍구를 막아 발전을 하면 송풍기 돌리는 데에 더 많은 전력이 들어갈 수밖에. 이건 뭔, 에어컨에서 나오는 열을 모아 발전을 해서 그 전기로 에어컨을 돌리겠다는 얘기랑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여기에 무려 300억원을 쓸 예정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돈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는 회사 대표의 말. “실제로 되냐 안되냐가 중요한 거지 물리학법칙(열역학 제2법칙)은 생각할 필요없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얼마 전 진보신당에서 한 기자회견을 열어 신에너지 개발업체 E사를 사기혐의로 고발하며, “E사가 물에서 수소를 분리해 400% 이상의 열효율을 낼 수 있는 세계 최초 수소 상용화 기술을 개발했다며 수소 보일러 등 물건을 대주겠다고 속여 200여명에게 대리점 계약금 등 170억여원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이 업체는 장영실과학기술 대상, 비전 2007 기술혁신기업(재생에너지부문) 대상, 대한민국 환경대전 환경부 장관상을 받았다고 한다.
‘물을 전기분해해 만든 수소·산소 혼합가스로 몇배의 에너지를 만들어냈다’는 이 신기술에 대해, 수소연료 연구 전문가들은 “없는 에너지가 새로 생기는 법은 결코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마디로 E사에서 자랑하는 기술은 에너지보존법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얘기. 오, 이 집요한 영구기관의 꿈이여. 이분들 얘기는 5분 분량으론 턱도 없겠다. 이로써 나는 찍지도 못한 단편영화의 속편을 무려 장편 분량으로 찍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