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1786~1856). 주로 추사나 완당이라는 호로 많이 불린다. 조선 후기 최고의 명필가라는 극찬을 받을 만큼 서예로 널리 알려졌고 그 밖에 시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한편으로 금석학, 고증학, 불교학 등 당대 학문 연구에서도 남다른 연구 성과를 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생전에 자신의 저술서들을 두 차례나 불태워버려 지금 남은 건 대부분 그의 서신들뿐이라고 한다. 김정희는 예술가였지만 동시에 관료였다. 34살에 과거에 급제한 뒤 정계에서 크고 작은 벼슬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말년에는 당쟁에 휘말리며 기나긴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김정희에 관련된 몇 가지 전설이 있는데, 어머니의 뱃속에서 24개월 동안이나 있었다거나 그가 태어나자 집 주변의 산천이 갑자기 생기를 찾았다거나 하는 출생 전설. 또는 그가 여섯살 때 입춘대길이라 써서 대문에 붙인 글씨를 보고 당대의 지식인 박제가가 스스로 이 아이의 스승이 되겠다고 자청했다거나 당시 영의정이었던 체제공이 지나다 이걸 보고 명필로 이름을 떨치겠으나 반드시 운명이 기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유년 시절의 신동 전설. 또는 유배를 가는 길인데도 해남 대둔사의 현판 글씨를 보고 당장 저런 걸 떼고 새로 달으라며 그 자리에서 글씨를 써주었다는 전설 등이다.
김정희는 당색을 가리지 않고 학문적 교우에 힘썼으며 그중에는 다산 정약용과의 학문적 교류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55살 때부터 63살까지 제주도 귀양살이를 9년 동안 하게 됐고 그 유명한 <세한도>도 59살 때 유배 생활 5년째 접어들었을 때 완성한 작품이다.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니, 그의 질곡 많은 인생에 한번 주목해볼 만하다. 그러고 보니 추사, 완당, 이름만 많이 들었지 아는 바도 본 적도 많지 않다.
추천인은 누구
심윤경 소설가·<서라벌 사람들> <달의 제단> <나의 아름다운 정원> 등 저술
추천한 이유는
“나의 두 번째 소설 <달의 제단>은 언간문학(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로 주고받은 편지글)을 다룬 것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김정희 이분은 이 분야에서도 최고봉이었다. 그의 언간 자료를 읽으면서 소설 속에서 그걸 구현하는 나로서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편지 한통 한통이 전부 대단하다. 한 글자씩 바꿀 때마다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여하튼 이 양반은 적어도 자기가 손댄 예술방면에서는 전부 일인자인, 말하자면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김정희는 예술가이지만 관료이기도 했다. 이 점이 가장 궁금한 건데, 어떻게 성실하게 관료의 일을 해내면서도 민감한 예술가로서의 일을 또한 견딜 수 있었던 것일까. 김정희는 정말 대표적인 조선의 천재다.”
영화로 만든다면
“누가 좋을까. 예술가이면서도 칼 같은 관료의 이미지를 다 가지고 있는 인물이. 옆에서 누가 이서진이라고 말하란다. (웃음) 내 생각에는 김명민도 좋을 것 같다. 혹은 그보다 약간 선이 더 부드러운 배우도 좋을 것 같고.” 심윤경 작가의 배우 추천사다. 김정희는 질곡 많은 삶을 살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취화선>을 만든 임권택 감독이 만약 김정희에게도 관심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작품이 나올 것이고 혹은 누군가 한승원의 소설 <추사 김정희>에 살을 붙여도 좋을 것이다. 김정희는 생전에 수많은 사람과 교류가 있었으므로 그 교류의 흔적만을 묶어 뭔가 실험적으로 만들어본다면 기묘한 역사극이 나올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