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가 스물에 장안에 들어가 가을 연꽃처럼 춤을 추자 일만 개의 눈이 서늘했지 들으니 청루에는 말들이 몰려들어 젊은 귀족 자제들 쉴 새가 없다지
호서 상인의 모시는 눈처럼 새하얗고 송도 객주의 운라 비단은 값이 그 얼만가? 술에 취해 화대로 주어도 아깝지 않은 건 운심의 검무와 옥랑의 거문고뿐이라네.
18세기 밀양 출신의 문인 신국빈이 운심(첫 번째 시에서는 연아)의 검무를 보고 묘사한 시라 한다. 무용가이자 당대의 유명 기생이었던 운심은 이 시가 찬탄하는 것처럼 검무의 일인자였다. 원래는 밀양 출신인데 장안에서 벌어지는 공연에 참여시키기 위해 조정이 지방의 기생들을 불러올리는 과정에서 장안에 자리를 잡았고 더 유명해졌다. 운심은 돈과 권력보다는 협객의 의와 통할 줄 아는 협기였다 한다. 연암 박지원은 그녀가 세도가들의 요구에는 춤을 추지 않다가, 광문이라는 한 허름하고 소탈한 거지이자 협객이 요구하니 춤을 추더라는 목격담을 전한다. 또는 운심은 조선 최고의 서예가 중 한 사람인 백하 윤순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둘 사이에 사랑의 서약으로 오고간 서첩이 우연하게도 세도가인 조현명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일화도 있다. 나이가 든 다음 운심은 전국을 여행했는데, 평안북도 영변에 있는 약산동대에 올랐을 때 그녀 스스로 “약산은 천하의 명승지요 운심은 천하의 명기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한번 죽는 법. 이런 곳에서 죽는다면 더없이 만족이다”라며 자살하려다 주위의 만류로 거뒀다는 일화가 있다. 조선시대의 숨겨진 무용가 운심에 대한 기록은 이 뒤로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는 어디에서 춤을 추며 생을 마쳤을까. 알려지지 않은 또 한명의 예술가이자 기생 운심의 영화화는 흥미로울 것이다. 지금까지의 일화나 인용은 모두 <조선의 프로페셔널>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추천인은 누구
안대회 문학박사·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조선의 프로페셔널> <고전 산문 산책: 조선의 문장을 만나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 등 저술
추천한 이유는
“황진이나 대장금 등 여성주인공을 내세운 작품들이 이미 있었지만 운심은 또 다른 차원에서 흥미로울 것이다. 기생이면서 특히 무용가였던 이 여인의 일생을 재고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무용가라고 할 때 흔히 최승희 정도만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운심이 장안에 들어오고 나서는 당대의 고관대작들이 전부 그녀의 무용을 보러 갈 정도였다. 미인이었고, 역동적인 삶을 살았고, 로맨스도 있으므로 영화화하기에는 좋은 소재다.”
영화로 만든다면
어쩌면 성공 여부의 8할은 운심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다. 예를 들면 몇해 전 나왔던 영화 <황진이>가 크게 호소하지 못했던 건 항간의 주장처럼 송혜교가 옷을 벗지 않아서가 아니라 황진이의 정서가 송혜교를 통해 잘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운심은 “성격이 날카롭고 미모도 있으면서 강인한 느낌”이라고 안대회 교수는 추천의 변을 밝혔는데, 얼핏 생각하니 조선시대에 살았던 최승희라는 식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밀양이라고 하니 전도연도 생각나고, 검무라고 하니 드라마 <황진이>에서 주인공 하지원이 추던 춤사위도 생각난다. 하지만 협기이자, 무용가이자, 당대 최고의 기생으로 본능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고현정을 추천해보면 어떨까. 신선한 도전이 되지 않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