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1569~1618)이 서자 출신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대표작의 주인공 홍길동에 비해 저자 허균의 삶이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일 것이다. 허균은 우의정을 지냈던 증조부, 이름난 선비였던 아버지 아래서 태어났다. 누이 난설헌과 함께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의 소생이었지만 그가 양반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서얼들의 친구이자 후원자를 자처했고 천민과 개가한 부인들을 앞장서서 동정했다. 그는 <홍길동전>은 물론이고 다양한 글을 통해 서얼 차별을 비판했고, 천민과 여성들의 삶에 대한 개선책을 고민했다.
시대의 엘리트 허균은 왜 이들 ‘마이너리티’를 옹호했을까. 이이화씨 등 역사학자들은 허균의 어릴 적 스승 이달에게서 그 첫 번째 근원을 찾는다. 이달은 뛰어난 문장에도 불구하고 서자라는 이유로 벼슬길이 막혀 술과 방랑으로 세월을 보냈다. 허균은 어린 날 스승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며 서얼 차별 문제에 눈을 떴던 것이다. 또 어릴 적 친구인 이재영이나 가까웠던 서양갑 등이 서얼이라는 이유로 출세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서얼들의 반란음모를 격려했다. 학문에서도 그는 선입견이 없었다. 유교만을 숭상했던 당시 분위기에서 허균은 불교, 도교의 세계를 받아들였고 천주교 서적을 최초로 조선에 들여오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평민 출신 화가, 기생, 승려 등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술집을 드나들며 떠들썩하게 놀기를 좋아했다. 때문에 그는 어떤 이로부터 “허균은 천지간의 한 괴물이다… 인륜의 도덕을 어지럽혔으며 행실을 더럽혔다”는 평가를 듣기까지 했다. 인생의 말미에 붕당정치에 뛰어들어 스스로 희생됐지만, 그것이 허균의 체제전복적 요소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추천인은 누구
이이화 민족문화추진회와 서울대 규장각, 역사문제연구소에 봉직했으며 <역사비평> 편집인을 지냈고,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저서로는 <국의 파벌> <조선후기 정치사상과 사회변동> <역사풍속기행> <한국사 이야기> 등
추천한 이유는
“허균은 봉건사회의 모순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던 17세기에 활동했다. 그 자신은 양반가에 태어나 높은 벼슬을 지냈으나 무엇보다 신분평등을 외치면서 서자, 무사, 종 등 하층계급과 어울렸고 이들을 끊임없이 도왔다. 또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유교에 맞서 양명학, 천주교도 수용했다. 특히 그의 삶은 자유분방해서 번문욕례(繁文褥禮)와 허례허식을 거부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는 현실비판적 문제의식이 깔려 있는 시문을 썼을 뿐 아니라 언문소설 <홍길동전>을 통해 서자 등 하층민의 불평등한 처지와 관리의 부정 등 현실의 비리를 고발했고 율도국이라는 이상사회를 그렸다. 이러한 허균의 삶이 어찌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영화로 만든다면
허균의 삶을 <홍길동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홍길동은 허균이 꿈꾸던 슈퍼히어로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홍길동이 도적떼와 함께 탐관오리의 관아를 습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관리들을 흠씬 패고, 술판을 벌이려는 순간, “잠깐만”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구상 중인 소설 이야기를 한창 떠들던 허균의 말을 한 서얼 친구가 가로막은 것. 그는 서얼들, 승려, 기생 등 조선사회의 아웃사이더들과 술판을 벌이며 <홍길동전>의 이야기를 구상하던 중이다. 결국 이 영화는 허균이 <홍길동전>을 쓰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자, 사회의 불의를 접하는 허균이 시시때때로 홍길동으로 변신하는 액션 장르영화다. 때론 진중함이, 때론 만화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 영화의 연출자로는 김현석 감독이 적당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허균은? 다소 밋밋했던 드라마판 <홍길동>을 아쉽게 생각하고 있을 김석훈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