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최치원(857~?).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신라 말기 최고의 문장가이자 학자. 그러나 관료로서는 제 뜻을 이루지 못하고 40대에 이미 낙향하여 유람하다가 노년을 초야에 묻고 살았다 한다. 말년을 가야산 해인사에서 지냈는데 신발만 남기고 신선으로 사라졌다는 설도 있다. 무엇보다 최치원에 관한 한 당나라의 조기 유학길과 이른 장원 급제, 그곳에서 관료로 일한 경험 등이 유명하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12살에 당나라로 건너간 뒤 피눈물나게 공부하여 당대 선진 문물을 배우고 익혀 돌아온 한반도 역사상 초기 유학파. 당나라에서 사령관의 종사관으로 일할 당시 토황소격문이라는 유명한 글을 작성하여 난을 일으킨 적장 황소를 글로써 제압했다 하여 유명해진다. 그 공로로 중앙에 진출하나 아버지의 위독한 병환을 계기로 사신 자격을 얻어 신라에 일시 귀국하고 그 길로 눌러앉게 된다. 그때가 20대 후반. 하지만 진성여왕 시기 등을 거치며 시대상이 어지러워지자 정계를 떠나 떠도는 지식인의 삶을 살았다.
최치원은 쓰러져가는 당나라와 신라 말기, 두 시대를 모두 경험한 기이한 인물이기에 어쩌면 지금으로서는 중국과 한반도의 문화를 겹쳐놓고 펼쳐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인물이 될지도 모를 일. 최치원의 그런 삶이 얼마나 흥미롭게 느껴졌는지 이미 조선시대에 그를 주인공으로 한 작자 미상의 영웅소설 <최고운전>이 나왔을 정도다. 어린 최치원이 중국 황제와의 수수께끼 싸움에서 승리하는 일화 등 영웅소설의 전형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숱한 무인들이 아닌 문인의 삶을 픽션화했다는 점에서 특색있다.
추천인은 누구
김탁환 역사소설가·<방각본 살인사건: 백탑파, 그 첫 번째 이야기> <열녀문의 비밀: 백탑파, 그 두 번째 이야기> <열하광인: 백탑파, 그 세 번째 이야기> 등 저술
추천한 이유는
“조선 후기 백탑파(이득무, 박제가, 유득공 등 자연스레 개혁을 꿈꾸게 된 서자 출신의 젊은 문인과 그들과 허물없이 뜻을 같이했던 윗세대 박지원, 홍대용 등의 실학자들을 함께 묶어 부르는 말. 김탁환 작가는 세권의 백탑파 연작 시리즈를 통해 이들을 다뤘다)가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문물을 구경하고 책을 사오고 한 정도라면 최치원은 이미 훨씬 전에 그와 유사한 욕망을 갖고 있었고 크게 실현한 사람이었다. 밑바닥부터 제대로 공부해서 올라간 거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백탑파를 공부하며 최치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영화로 만든다면
“두 가지가 핵심이 될 것 같다. 조기 유학을 해서 관리가 되는 데까지 최치원의 젊은 날을 다루는 과정 하나. 귀국해서 뜻을 펼치려다 좌절하는 과정 하나. 한국과 중국의 합작을 통해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최치원을 영화화할 때 핵심적으로 극화하면 좋을 면모라고 김탁환 작가가 꼽은 부분이다. 여기에 한 부분을 더 추가할 수 있다. 관직을 떠나 유람하다가 해인사로 들어가 생을 마쳤다는 최치원의 잘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노년 생활을 집중적으로 상상하는 영화는 또 어떨까. “최치원은 좀 까칠하고 성격이 강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김갑수씨가 떠오른다”고 김탁환 작가는 배우에 관해 덧붙이는데, 좀 새로운 얼굴 중에는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최만리 역을 맡고 있는 이성민도 적임자로 보인다. 백탑파의 영화화에 대한 관심이 이미 몇해 전부터 있어왔다는 걸 생각한다면 최치원도 확실히 한번 도전해볼 만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