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타 가쓰야 감독은 아직 두편의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 일본의 신인감독이다. 네명의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영상제작집단 ‘구조쿠’를 만들어 직접 제작·배급·광고까지 해내는 독립영화 감독이다. 일본에서는 그의 첫 번째 완성작인 8mm로 찍은 140분짜리 영화 <구름 위>가 주목받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메가박스일본영화제 프로그래머이자 영화평론가인 데라와키 겐이 ‘2007년 최고의 수확’이라는 찬사를 보낸 <국도 20호선>은 그의 두 번째 작품. 지방 국도변의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파친코 게임으로 소일하고 시너를 흡입하며 감정을 달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객석 50석 이하인 미니시어터에서 상영했는데, 한국의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돼 기쁘다”는 도미타 가쓰야 감독을 제5회 메가박스일본영화제 마지막 날 만났다. 트럭 운전 일을 하는 그는 쉬는 날인 주말을 이용해 한국을 찾았다.
-미래에 대한 꿈도 희망도 없는 젊은이들에 대한 얘기다. =꿈과 희망을 상실한 내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그들은 왜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됐는지 그 원인을 생각했고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아이사와 도라노스케와 공동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했는데, 주인공들은 ‘꿈과 희망이 없는’ 젊은이들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 시스템에 의해 ‘꿈을 상실한’ 사람들이다.(<국도 20호선>의 각본과 촬영을 맡은 아이사와 도라노스케도 인터뷰 자리에 동석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본인의 세대와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다른 것 같나. =내 영화를 보신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세상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의사를 표현했고 영화 역시 그랬는데 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반항할 의지조차 없어서 도무지 감정 이입할 수 없다고. 난 오히려 세상에 반항하고 반격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리얼리티를 찾을 수 없다. 반항한다는 것은 희망을 품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나와 내 밑의 세대는 그런 면에서 반항할 의지조차 없는, 절망감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은 세대라고 생각한다.
-희망이 없다면 그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시너를 흡입하며 환각상태를 즐기기만 하던 히사시가 마지막 장면에서 행한 행동도 충격적이었다. =도저히 해피엔딩으로 만들 수 없었다. 해피엔딩으로 그린다면 그들의 모습을 포장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전혀 꿈도 희망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니다. 히사시가 자신이 살던 마을을 떠남으로써 이전의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스텝이 된다. 히사시처럼 나이브하고 섬세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약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일 뿐이며, 세상에 대해 맹렬히 반격하는 건 아니지만 떠남으로써 다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히사시가 항상 입고 다니는 옷이 인상적이었다. 검은색 바탕에 커다란 흰색 꽃무늬 프린트가 들어간 한벌짜리 옷. 어떻게 의상 컨셉을 정했나. =야쿠자들이 편해서 그런 옷을 많이 입는다. 말단 불량배인 주인공은 그가 부러워하는 대상인 야쿠자의 옷을 따라 입음으로써 자신의 소망을 표현하는 거고. 사실 싸구려처럼 보이지만 40만~50만원 정도 하는 비싼 옷이고,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옷이다. 한국의 폭주족들은 어떤 옷을 입나? 딱 봤을 때 불량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특징적인 복장이 있나?
-한국의 폭주족들은 주로 오토바이를 꾸민다.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엔 같은 브랜드를 맞춰 입는다거나 같은 신발을 신기도 했다. =그들은 그게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가?
-글쎄, 그들 생각이겠지. =그러니까. 자기들끼리는 좋아 보여도 옆에서 보면 촌발 날린다. (웃음) 영화에서 주인공이 입는 옷도 마찬가지고.
-트럭 운전수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경험이 영화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나. =7년 정도 트럭 운전 일을 하고 있는데 당연히 영화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들이 있다. 실제로 경험하고 부딪힌 문제들을 영화로 표출하는 거니까. 트럭 운전사는 주 5일이 완전히 보장되고 주말에는 제대로 쉴 수 있어 좋다. 그 시간을 활용해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영화만 만들어서는 생활할 수가 없다.
-전작인 <구름 위>도 그렇고 <국도 20호선>도 그렇고 일본에서 많은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사실 아주 일부에서 그런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모두 내 영화를 아는 것도 아니다. 매년 일본 영화 관객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너무 안타까웠다. 만들어지는 작품들도 별로 재미가 없고. 그래서 더욱더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데라와키 겐도 그런 사회풍조 속에서 평가를 해준 게 아닌가 한다.
-오후에 ‘신인감독이 영화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다’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 참석한다. 이경미, 장훈 감독 등 한국의 젊은 감독들도 만나는데. =이경미 감독과 잠깐 만나서 얘기를 나눴는데 <국도 20호선>을 재밌게 봤다고 하더라. 영화 만들 때 일본 내 평단에서 완전히 무시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고민이 많았다. 설마 이 작품으로 해외에서 상영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한국 관객과 이경미 감독이 좋아해줘서 기쁘다. 이경미 감독과 관계가 잘 지속돼서 언젠가 함께 작품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