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스틸러와 크리스 록이 내년 1월8일 개봉하는 <마다가스카2>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2005년 개봉한 전작에 이어지는 <마다가스카2>에서 사자 알렉스(벤 스틸러)와 얼룩말 마티(크리스 록) 일행은 마다가스카 섬을 떠나 고향인 뉴욕으로 귀환하려다 아프리카의 대초원에 추락하고야 만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야생의 모험은 계속되고, 실사 블록버스터의 속편 전략(더 거대하고 더 빠르게!)을 충실히 따르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특징도 여전하다. 벤 스틸러와 크리스 록을 11월19일 오후에 신라호텔에서 라운드 테이블로 인터뷰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홍보 여행을 하느라 피곤한 얼굴에서 아프리카에 떨어져 뉴욕을 그리워하는 사자와 얼룩말이 어른거린다.
벤 스틸러
-사자 알렉스와 외모와 느낌이 참 닮았다. =글쎄, 정확하게 같은 건 아닐 거다. 내 태도나 표정을 반영하긴 했겠으나 그건 아주 미묘한 부분이고, 결국은 독립적인 고유의 캐릭터다. 다른 실사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캐릭터들에서 배우의 특징이 묻어나긴 하지만 실제 배우와 똑같은 건 아니다. 게다가 알렉스는 나보다 머리숱도 훨씬 많고. (웃음)
-<마다가스카2>의 주연배우들도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뉴요커다. 그 사실이 배역을 소화하는 데 도움이 됐나. =물론. ‘야생에 던져진 뉴요커’가 이 영화의 테마니까. 뉴욕은 코스모폴리탄적인 대도시다. 뉴요커들은 그 속에서 나름대로 독립적인 공간을 갖고 살며, 뉴욕을 떠나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연배우들과 캐릭터 사이에 공통점이 더 생겨났을 거다.
-알렉스와 마티는 동갑내기 친구다. 당신과 크리스 록도 동갑내기 친구 아닌가. =물론이다. 시나리오 쓸 때도 그 사실이 어느 정도는 반영됐을 거다. 우리가 최고의 친구 사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친분이 있고, 동갑이고 또 둘 다 뉴요커니까. 크리스와 내가 알고 지낸 시간만 20년은 될 거다. 이 영화를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져서 더 친해지기도 했고.
-90년대 당신이 감독한 <청춘 스케치>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재미있는 건 당신이 그 직후 코미디 배우로 더 유명해졌다는 거다. 마침내 고유의 장기를 찾아낸 건가. =지금도 다른 것들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많다. 감독으로도 계속해서 코미디영화를 만들었잖나. 다들 <케이블 가이>는 코미디라기에 너무 어둡다고는 하지만. (웃음) 이젠 코미디라도 조금 다른 종류의 코미디를 연출해보고 싶다.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수명이 배우의 수명보다 더 길지 않은가. 그러니 살다보면 다른 종류의 영화를 할 기회도 올 거다.
-<트로픽 썬더>도 곧 개봉한다. 다른 종류의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각각의 코미디의 강도를 어떻게 조절하나. =코미디는 주관적인 거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 모든 관객이 웃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웃음의 포인트가 다르다. 특히 코미디영화가 다른 문화권에서 개봉하면 코미디를 해석하는 관점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한 코미디가 전세계에서 공히 성공을 거두기는 힘들다. 그래도 코미디영화는 리얼리티에 기반하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게 영화의 톤이든 관점이든. 리얼리티에 기반해야만 관객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크리스 록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이라 즉흥연기에 능할 텐데, 애니메이션은 만들어진 화면에 목소리를 입히는 일이다.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나. =각본도 정해져 있고 넘기지 말아야 할 수위도 있다. 하지만 제작자들은 그 수위를 지키는 한에서 나만의 애드리브를 발휘하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것이 나의 재량대로 한 거다. 오해하진 마라. 각본은 그 자체로도 괜찮았다. 하지만 제작자들이 나를 고용할 땐 뭔가 나다운 것을 대사에 녹여내기를 바랄 것이다. 대본 그대로 읽어야 하는 역이라면 나 말고 다른 배우를 찾았을 것이다.
-<꿀벌 대소동> 등의 애니메이션에서도 목소리 연기(Voice Acting)를 했다. 일가견이 있나보다. =보이스 액팅이라기보다 퍼스낼리티 액팅(Personality Acting)이라 부르고 싶다. 내가 아닌 다른 캐릭터로 변모해서 그걸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일이니까. <마다가스카2>에서 보여지는 건 전체 관람가 버전의 크리스 록이다. 에디 머피가 <슈렉>에서는 전체 관람가 버전의 에디 머피였듯이 말이다.
-자신이 독특한 존재라고 생각해온 얼룩말 마티는 아프리카에서 자신과 똑같은 일족을 보고 난 뒤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당신 역시 그런 위기를 겪은 적 없나.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면서 같은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에디 머피 흉내도 내봤고. 하지만 중요한 건 나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데 오랜 기간, 거의 12년이 걸린 것 같다.
-오스카나 그래미 시상식에서 걸출한 입담을 자랑했다. 타고난 건가. =입담을 타고났다고는 생각하지 안 한다. 엄청난 노력의 결과다. 오스카 시상식이 2월27일이었고, 사회를 맡겠냐는 제의는 지난해 할로윈 때 받았다. 그래서 지난해 추수감사절에 이미 사회의 각본을 다 완성해서 매일매일 하루 서너번씩 연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