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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프로의 아슬아슬한 오락

MBC 여운혁 책임PD와 첫 방송 앞둔 <음악여행 라라라>

MBC 예능국 여운혁 책임프로듀서의 힘은 ‘사람들’에 있다. 혼자 있을 땐 어딘지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웃기는 짜장면들’을 만드는 재주를 그는 지녔다. 지난 봄까지 이끌었던 <무한도전>이 그랬고, 현재 맡고 있는 <황금어장>과 <명랑히어로>, 첫 방송을 앞둔 <음악여행 라라라>(이하 <라라라)>가 그렇다. 흔히 ‘버추얼 버라이어티’라 불리는 요즘 인기 예능 프로그램들이 여러 명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그들이 노는 모양새를 구경하는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여운혁 프로듀서는 예능계 트렌드를 이끄는 주역이라 할 만하다.

“사람들을 분석해서 각기 다른 캐릭터를 부여했다고들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뭘 분석하고 꾸미는 치밀함이 없는 편이니까. 그냥 누구랑 누가 같이 있으면 재미있겠다, 웃기겠다는 생각은 자주 하죠. 방송에는 어떤 ‘선’이 있거든요. 사회문화적 심의랄까, 자기검열이랄까 그런 건데, 저는 이 선을 살짝살짝 넘나들길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도 앞에서 뭘 주도하는 게 아니라 뒷자리에 앉아 딴짓하면서 킥킥대는 쪽이었거든요. 방송에선 ‘마당’을 만들어놓고 웃기는 친구들이 거기서 노는 걸 보면서 같이 웃는 셈이죠. 아슬아슬한 재미를 좋아하는 건 사실 좀 위험한데, 다행히 경계가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시청자가 조금씩 더 많이 허용해주는 거죠.”

제작비 절감과 재미를 동시에

고품격 심야 음악프로그램을 표방한 <라라라>는 <황금어장-라디오 스타>를 진행하는 김국진·김구라·윤종신·신정환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진행하고, 재능있는 뮤지션들을 초대해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그가 <라디오 스타>의 진행자들을 <명랑히어로>에 앉히고, 최근 <라라라>에 세우자 ‘여운혁 사단’이라는 말도 생겼다.

“사단 같은 건 없어요. 이번 MBC 가을 개편이 제작비를 아끼자는 취지인데, 출연료를 조금 받고도 하겠다니까 맡긴 거지. (웃음) 윤종신씨는 가수 겸 작곡가고 신정환씨는 개그맨보다 웃기지만 음악에 대해선 굉장히 진지해요. 김구라씨는 디제이로 출발한 사람이고. <라디오 스타>에서 이들의 음악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검증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로선 안전한 선택을 한 거죠. <라라라>에선 ‘음악 이야기만 해보자’는 생각이에요. 가수들이 쇼프로그램에 나오면 음악이 아니라 ‘사람’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거 안 하면 어떨까. 첫 출연자가 가수 이승열씨인데, 음악하는 사람들은 실력있다고 하지만 대중은 잘 모르거든요. 그래서 주제가 ‘왜 안 떴나?’예요. 음악은 좋다고들 하는데 당신은 왜 안 떴나요. (웃음)”

여운혁 프로듀서의 또 다른 재주는 낯선 사람을 초대해 예의 부족한 태도로 이것저것 다그치며 결국 굽이굽이 사연 많은 인생담을 풀어놓게 만드는 것이다. 야구선수 양준혁과 배우 김윤진, 소설가 황석영에 발레리나 강수진까지, 장르를 불문한 각계 인사들이 ‘무릎팍도사’의 주문에 걸려들어 시청자를 울리고 웃기는 ‘광대’가 됐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한 사람들에겐 역시 뭐가 있구나, 싶어요. 연예인이든 아니든 그런 기준으로 섭외를 하죠. 가장 뛰어난 오락 프로는 아닐지라도 가장 오래가는 오락 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세상에는 자기 일과 인생에 긍지를 갖고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겐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거든요. 그런 이야기 싫어할 사람 누가 있나요.”

사진 정용일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