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감독 프란티세크 블라칠 상영시간 159분 화면포맷 2.33: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2.0 체코어 자막 영어 출시사 세컨트 런(영국) 화질 ★★★☆ 음질 ★★★☆ 부록 없음
우리에게 친근한 체코의 영화감독, 즉 밀로스 포먼, 이리 멘젤, 이반 파세르, 베라 키틸로바 등은 모두 1960년대의 체코 뉴웨이브와 관계했던 자들이다. 1998년, 거의 잊혀진 미지의 감독이 주목받는 일이 벌어진다. 체코의 영화평론가들이 ‘최고의 체코영화’로 <마르케타 라자로바>를 선정하고, 프란티세크 블라칠 감독이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것이다. <마르케타 라자로바>는 역사와 인간애에 천착한 (그래서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한 동시대 영화들에 비해 저평가된) 블라칠 영화의 스타일과 주제가 집약된 대표작이다.
때는 13세기, 코즐리크 부족의 두 아들이 작센 귀족을 습격한다. 이에 분노한 왕은 군대를 보내 이교도 부족을 다스리려 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이웃 라자르 부족은 코즐리크 부족의 협조 요청을 거부한다. 이들 세력이 피를 뿌리며 충돌하는 가운데 새롭게 싹튼 사랑은 고난에 직면한다. 영화는 블라칠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그는 체코와 독일, 이교도와 기독교를 대비하면서 억압적인 권력과 피지배자의 저항, 자유로운 자의 권리와 얼어붙은 도그마의 문제를 현재화한다. 영화의 주제는 ‘산 자의 삶’이다. 아비의 죽음을 염려하는 아들에게 어미는 “나이 든 자에게 평화로운 무덤을 맡기고, 산 자들을 기억하라”고 충고한다. 수녀가 되려던 여자와 이교도의 남자, 주교로 선출된 남자와 이교도 여자 사이의 사랑은 세속적인 갈등을 초월하고, 죽음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살아남은 두 여자는 새 생명을 잉태한다. 인간의 교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블라칠. 그는 사랑과 확신이 잔혹 및 의심과 다투면서 인간의 영혼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말로 영화를 끝맺는다.
보편적인 주제가 <마르케타 라자로바>를 고전에 위치시킨다면,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형식미에서 발견된다. 시각적 이미지와 실험적 구조에 집착했던 블라칠은 ‘필름 오페라’라고 이름 붙인 결과물을 통해 충격과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2년 넘게 중세의 삶을 강요당한 배우들과 치밀하게 준비된 현장은 먼 중세의 시공간을 눈앞의 경험으로 바꾸어놓았고, 회화에 버금가는 영적이고 시적인 미장센, 화면 바깥에서 주문을 거는 듯한 내레이션과 자막, 전후관계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인 플래시백과 현재, 이야기의 전개에 우선하는 인물의 심리는 <마르케타 라자로바>를 전혀 익숙하지 않은 영화로 만든다. 거대한 모호함, 공포가 깃든 신비감, 무시무시한 야만의 최전선. <마르케타 라자로바>의 첫인상은 그렇다. 세번은 봐야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영화다. 상세한 해설 책자 외에 어떤 부록도 없는 DVD다. 전세계 최초 출시에 의미를 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