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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마감이여 안녕
김경우 2008-11-14

빌 머레이, 앤디 맥도웰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이란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혹시 안 본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노파심에 주인공이 겪게 되는 상황을 살짝 이야기하자면…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시골로 봄을 알리는 축제인 성촉절(Groundhog Day) 취재를 간 기상통보관 필. 취재는 잘 마쳤지만 갑자기 내린 폭설로 발이 묶인다.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일어난 필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게 되는데…. 왜인고하니 어제 들었던 라디오 방송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 긴가민가하며 밖으로 나간 그에게 펼쳐진 것은 어제와 똑같은 풍경이다. 그러니까 하루 주기로 시간이 반복되는 마법에 걸려버린 것이다.

매일 하루가 반복되는 삶이라… 뭐 나처럼 ‘유치찬란뽕짝’스런 상상력으로 가득한 이에게는 어쩌면 꽤 매력적인 상황일 수도 있겠다. 주인공 필도 처음에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이내 곧 천하에 유치하고 나쁜 장난질을 하는데 나도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평소 꾹 참고 있었던 욕망을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물 쏟아지듯 분출할 듯싶다. 그게 천하의 몹쓸 짓이라도 어차피 내일이면 지우개로 싹 지우듯 사라질 텐데 뭐 어떠리. 문제는 24시간을 맘껏 즐기는 데 필요한 돈인데 이것도 “방문하시자마자 5분 만에 대출”이 가능하다는 사채업자를 찾아가 매일 빌릴 수 있는 만큼 돈을 빌리면 될 일이다.

뭐 웃자고 한 이야기고, 사실 이런 상황이 실제로 닥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의 지루함과 다른 의미의 ‘연속성’을 견뎌낼 이가 누가 있겠는가. 뭘 해도 다시 ‘리셋’되는 결과 때문에 솔직히 어떤 일을 하더라도 책임감있게 성취감을 느끼며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영화는 다소 교훈적이라 초반 자포자기식으로 의미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필은 어느새 마음을 고쳐먹는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또 벌어질 일이긴 하지만 매일 봐와서 너무나 잘 아는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사람을 구해준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밑에서 받아준다든지, 음식이 목에 걸려 질식하기 직전인 사람을 구해준다든지 하는 소소한 선행들인데, 구해준다 한들 또다시 반복될 사고들이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매일 그런 선행을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그에게 내일이 찾아온다는 지극히 교훈적인 결말로 영화는 끝을 맺는데 불현듯 영화의 상황이 <씨네21>의 마감인생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반복성만 따진다면 지금 독자들께서 보고 계시는 <씨네21>의 마감인생도 만만치 않다. 하루가 반복되는 그것에 비할 바야 아니겠지만 주 단위 마감은 정말 끊임없는 반복의 연속이다. 특히 잡지의 레이아웃을 잡고 살을 채워가는 편집이라는 일은 더더욱! 마감의 절정인 목요일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정말 그 전주 목요일의 복사판이래도 과언이 아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그런 일상이 지겨울 게 당연할 듯도 하지만 참 놀라운 사실은 <씨네21>을 만드는 모든 이들이 매주 항상 최선을 다하고 그 상황을 즐긴다는 점이다. 마치 영화 마지막에서의 필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잡지를 만들기에 비록 마감은 매주 반복되지만 매주 탄생되는 <씨네21>의 모습은 그때마다 항상 새롭게 더 발전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사를 떠나게 되었는데 그렇게 마감을 함께한 동료들에게 죄송한 마음만 한가득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그 마감의 순간을 함께했다는 자부심은 영원할 듯하다. 모두 다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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