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광고는 다 똑같아. 여자모델 나와서 예쁜 척하고 제품 보여주고. 좀더 과감한 접근이 필요한 것 아냐?’ 처음 화장품 광고를 담당했을 때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이고, 또 화장품 광고를 둘러싸고 종종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과감한 접근’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여자모델이 나와서 ‘예쁜 척’하면서 제품을 보여주는 방식보다 더 효과적일지는 미지수다. 왜? 화장품에서 모델은 단순히 광고 주목도를 높이는 요소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제품력을 설득하는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속는다’는 말이 딱 맞는 경우다. 시청자는 분명 화장품 광고의 여자모델이 그 제품을 써서 아름다운 피부를 얻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모델의 모습에서 제품에 대한 확신을 얻는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4인의 아름다운 모델이 등장하는 광고가 있다. 이나영, 송혜교, 한가인, 한지민을 모델로 한 ‘아리따움’ 광고는 화장품 기업인 태평양에서 운영하는 뷰티멀티숍 런칭 광고다. 4명의 모델이 두명씩 짝을 이뤄 3편의 멀티광고로 제작·운영되는데, 다이나믹 듀오와 바비킴이 부르는 광고음악(BGM)이 그녀들의 ‘아리따움’을 예찬한다. 특별한 크리에이티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라면 4명의 한국 대표미인을 한꺼번에 기용했다는 정도. 하지만 이 광고는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그녀들이 웃을 때 자신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 짓게 된다. 그냥 들으면 촌스럽게 느껴지는 ‘아리따움’도 그녀들의 아름다움에 묻혀 정말 ‘아리땁게’ 느껴진다.
광고는 법칙(rule)을 파괴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칙(rule)은 없고 원칙(discipline)만 있을 뿐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파괴할 수 없는 법칙도 있다. 그중 하나가 ‘3B의 법칙’이다.
BEAUTY(미인), BABY(아기), BEAST(동물) 등 3가지 소재가 광고의 주목도를 높여준다는 법칙이다. 데이비드 오길비가 쓴 <광고 불변의 법칙>에 따르면, 영국 신문인 <데일리 미러> 편집장에게 독자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사진이 어떤 것인지 물었더니 “감동적인 아기사진, 감동적인 동물사진, 그리고 이른바 우리가 섹스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광고는 설득을 목적으로 한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 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존재는 설득을 용이하게 한다.
대한민국 광고는 대형 모델 의존도가 높다는 비판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가 약해서가 아니라 검증된 안전한 방법이기에 자주 쓰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광고주들은 이런 대형 모델의 몸값을 천정부지로 만들어놓으면서도 서로 차지하려고 애를 쓴다. 이런 모델을 갖는 것은 마케팅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보유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요즘 광고, 비슷한 얼굴들만 나온다고 너무 나무라지 마시라. 이런 광고가 소비자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답답한 시국에 ‘아름다운 그들’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영상은 보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