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스탭, 크고 작은 비중의 배우들까지 10명의 인터뷰이 중 가장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질문을 던져야 했던 인물은 단연 주윤발이었다. 그의 촬영이 끝날 때까지 추위와 졸음을 이기며 당연하다는 듯 2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련된 30분의 인터뷰. 웬만한 서구인을 능가하는 당당한 풍채, 신중하게 빛나는 두눈을 질문자에게 일일이 맞추는 세심함, 할리우드 스타 특유의 여유있는 매너에 유머감각, 그리고 완벽한 영어까지. 그가 사라진 뒤, 말 많고 까다롭고 시니컬한 11명의 기자들은 이 ‘도사’를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일단 무천도사 캐릭터에 대해 말해달라. 원작에서 그는 대표적인 ‘변태 할아범’ 아닌가! =당신, 일본에서 왔나? (한국에서 왔다는 대답에,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웃음)” 아마 당신이 나보다 무천도사에 대해 더 잘 알 텐데, 사실 난 그 만화를 본 적이 없다. 감독에게 처음 캐릭터에 대해 설명을 듣고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는 그런 역할을 안 한 지가 꽤 오래됐다. 홍콩에서 나는 70, 80년대에 걸쳐 정말 많은 코미디영화에서 믿을 수 없이 많은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유럽에서 온 당신들은 내가 그때 얼마나 웃긴 짓을 많이 했는지 전혀 모를 거다. (웃음) 이번엔 좀더 미친… 일종의 성룡 스타일? (좌중 웃음)
-당신이 소화하는 액션은 주로 어떤 것인가. =그게, 사실 난 영화에서 액션을 소화하는 게 아니라 CGI를 소화한다. 하하. 물론 무천도사는 쿵후 마스터니까 그런 게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는 그런 코믹한 외양 안에 나름의 고뇌를 지닌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그는 40년 넘게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살아왔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옛것을 지키려는 사람이기도 하다. 피콜로와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 슈퍼맨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이 국적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나이도 다양하다. =‘빅 패밀리’를 이끄는 가장이 된 기분인데, 애들이 하는 속어나 은어를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다. (웃음) 다양한 문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들이라는 점이 멋지다. 에미 로섬은 뉴욕에서 왔고, 저스틴은 밴쿠버, 박준형은 한국의 아이돌 출신이다. 아, 박준형은 LA에서 갈 만한 한국 음식점에 대한 좋은 정보를 줬다. (웃음)
-매니저와 결혼했는데, 일과 사생활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지 않나. =음, 오히려 좋은 점이 많다. 그녀는 나의 매니저고 안내인이고 솔메이트이며 조언자에 친구, 천사, 모든 것이다. 언제나 그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고 그녀의 결정을 따른다. 난 그냥 그녀의 인형 같은 존재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