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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데블즈 애드버킷

‘악마의 변호사’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데블즈 애드버킷’(The Devil’s Advocate)이라는 말이 있다. 악덕변호사를 지칭하거나, 악마의 말을 세상에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알 파치노와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하고 테일러 핵포드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톨릭에는 실제로 그런 이름의 직책이 있다고 한다. 어떤 인물을 성인(聖人)으로 정하는 가톨릭의 절차에서 후보자를 성인으로 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후보자의 품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기적이 사기라는 증거를 수집하는 등 반대자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 직책은 1587년 교황 식스투스 5세 때 만들어졌고,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 폐지되었는데, 폐지 뒤 성인으로 지정된 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가톨릭이 고안했던 ‘데블즈 애드버킷’이라는 직책은 우리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비록 불편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흔히 강남 사는 부자를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현재의 지배권력은 이러한 혜안을 벤치마킹하지는 못할망정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기존의 ‘데블즈 애드버킷’들이 눈꼴 시리다고 온갖 방법과 꼼수를 버라이어티하게 동원하여 분쇄하려 한다.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무리하게 방송통신위원장과 방송사 사장에 앉혀 비판언론을 접수하려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비판적인 시민단체들을 핍박한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순수한 시민들을 박해하고, 심지어 유모차를 끌고 시위에 나온 어머니를 국회에 불러 윽박지른다. 그리고 이 모든 불순한 일이 인터넷 때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인터넷 여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의 이름까지 판다. “정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관련된 문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기술이다”라는 발레리의 말이 이렇게 와닿은 적은 없었다.

현실세계에서 권력을 획득하고 행사하는 일련의 과정은 헌법과 법률에 정한 절차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상징을 장악하느냐’, ‘진실이 무엇인지 해석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를 둘러싼 싸움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전문가’라는 상징을 획득함으로써 대선에서 압승했다. 그 상징이 실제와 동떨어진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는지는 반년도 안 되어 입증되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고 그는 합법적인 대통령이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과거 진실의 해석을 둘러싼 투쟁이다. 누가 집단적 기억을 해석할 권리를 행사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헤게모니를 누가 차지할지 결정된다. 신문, 방송, 인터넷이 그러한 상징투쟁의 정점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현재의 지배권력은 권력을 유지,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상징을 장악하고 진실을 해석할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무능하다기보다는 영리하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이 싸움에도 한계가 있다. 넘어서는 안 될 선과 상식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지배권력은 그 한계를 의식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장악하고, 까불면 혼내준다’가 그들의 모토가 아니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데블즈 애드버킷’의 존재를 지우고 직책을 박탈함으로써 그대들은 아마 성인의 반열에,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대들이야말로 기적을 조작하여 성인의 반열에 오르려고 하는 무리고, 그대들이 저주하는 ‘악마의 변호사’들이 사실은 신을 대변하고 교회를 수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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