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 최고의 고수가 되겠다는 젊은 무사가 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내가 가장 세다”라고 허공에 대고 떠들 것인가? 만나는 모든 무사들과 싸움판을 벌일 것인가? 어느 세월에…. 영리한 무사라면 강호에서 가장 강하다고 인정받는 무사를 찾아 그와 ‘맞장’을 뜰 것이다.
광고에서도 누구를 주적으로 삼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구매현장에서는 내 고객을 빼앗아갈 수 있는, 같은 카테고리의 경쟁 브랜드들이 적이다. 하지만 광고를 만들 때의 적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치냉장고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광고가 겨냥해야 할 적은 경쟁 브랜드가 아니라 일반 냉장고다. ‘김치를 잘 시게 만드는 일반 냉장고’와 ‘김치를 신선하게 유지시켜 주는 김치냉장고’의 대결인 것이다. 시장 규모를 키워야 하는 초기에는 동일한 카테고리의 다른 김치냉장고를 공격하는 것보다는 냉장고라는 대체 카테고리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 광고상의 적은 이렇게 동일 카테고리가 아닌 다른 카테고리일 수도 있고, 때론 동일 카테고리라 하더라도 경쟁 브랜드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요즘 카메라 시장은 블로그, 미니홈피의 성장과 더불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사진찍기는 이제 특별한 날의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다. 그리고 그 일상은 좀더 질 좋은 사진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진다. 캐논, 삼성, 올림푸스, 니콘, 소니 등이 격돌하는 카메라 시장. 경쟁 브랜드들이 각각의 장점을 소구할 때 캐논은 전선을 새롭게 그었다.
‘휴대폰 눈치나 보는 똑딱이’와 ‘진짜 카메라, 캐논익서스’의 대결로 몰아갔다. ‘진짜에겐 진짜를’이라는 카피로 다른 경쟁 브랜드들은 모두 가짜들이라고 몰아붙였다. 적을 새롭게 규정하므로써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전략? 나쁘게 말하면 적의 우물에 독을 타는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표현방법도 전략만큼 대담하다. 카피도 모두 자막으로 처리했고 비주얼도 단순하다. 하지만 광고음악의 리듬을 타고 움직이는 카피 덕분에 메시지 주목도와 전달력이 훌륭하다.
전략적 전제는 아마도 이러했을 것이다. 모든 카메라가 각각의 장점을 떠들어댄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각 제품들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고급 카메라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DSLR다운 위상을 만들어주자. 니콘, 올림푸스, 삼성도 ‘똑딱이 카메라’ 외에 DSLR을 출시하지만, 캐논익서스는 한마디로 “나만이 진짜 카메라”라고 말하고 있다.
전선을 새롭게 규정하는 전략은 소비자에게 여러 선택 대안들이 존재하지만 크게 변별을 느끼지 못할 때 시장을 환기시켜서 그 브랜드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잘가라, 똑딱이’라는 이 캐논 광고를 만든 광고 대행사는 메이트커뮤니케이션즈인데 몇년 전 동일한 전략으로 사용해 성공한 사례가 있다. 의류브랜드 헤지스 광고인 ‘굿바이 폴’이다. 폴이 누구냐고? 폴은 ‘폴로’와 ‘빈폴’을 뜻한다. 그 광고로 소비자에겐 수많은 의류 브랜드 중 하나였던 헤지스가 폴로·빈폴과 같은 위상의 브랜드로 재인식됐다. 시장의 가장 ‘센 놈’과 겨룸으로써 순식간에 같은 반열에 올라선 경우다. ‘잘가라 똑딱이’와 ‘굿바이 폴’은 광고계의 쌍생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