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 소개가 끝나고 나면 다짜고짜 ‘호구조사’부터 시작한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과 직업은 무엇인지, 형제자매는 몇이나 되며 그들의 직업은 무엇인지. 토크쇼라기보다는 흡사 ‘심문’같다. 별다른 반응 없이 딱딱하게 질문을 이어가는 진행자의 태도 또한 이런 인상을 강화한다. 그런데 이 심문에 또박또박 성실하게 답변하는 이들은 안젤리나 졸리, 더스틴 호프먼, 톰 행크스 등 말하자면 미국 엔터테인먼트계의 거물들이다.
케이블·위성 영어교육채널 EBSe에서 방송하는 <Inside the Actors Studio>(월~일 밤 12시20분)는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불러다 앉혀놓고 그들의 출생부터 최근작까지를 꼼꼼하게 짚어보는 토크쇼다. ‘액터스 스튜디오 드라마 스쿨’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기도 한 이 프로그램은 1994년부터 미국 <브라보TV>를 통해 방영되어 올해 15년째를 맞은 장수 프로그램이다.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던 이 프로그램에 현재까지 출연한 게스트는 200명이 넘는데, 이중 아카데미 수상자만도 74명에 이른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시드니 폴락 등 유명 감독과 작가는 물론 엘튼 존 등 뮤지션들도 가끔 모습을 드러낸다.
프로듀서이기도 한 진행자 제임스 립톤과의 일대일 인터뷰, 배우 지망생들과의 질의응답 등 단조로운 형식으로 진행되는 <Inside the Actors Studio>가 오랜 역사와 기라성 같은 출연진을 자랑할 수 이유는 ‘진지함’ 때문이다. 작은 꼬투리 하나로도 왁자한 수다를 끌어가는 한국 토크쇼와 달리 이 프로그램은 날카롭게 오가는 대화 속에 출연배우의 역사와 연기론, 인생철학 등을 진중하게 담아낸다. 선을 넘지 않는 적당한 유머와 솔직함으로 ‘연예인’이 아닌 ‘배우’의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들여온 EBS 오정호 PD는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거나 시청률이 높지 않은데도 배우들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영예롭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생활에 집중하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Inside the Actors Studio>의 하이라이트는 인터뷰 말미에 주어지는 10개의 질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혹은 싫어하는 단어는 무엇인지, 가장 좋아하는 욕은 무엇인지, 도전해보고 싶은 다른 직업이 있는지, 천국의 문 앞에서 신에게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등의 내용이다. 프랑스의 유명 방송인 베르나르 피보가 만든 이 질문들은 다소 추상적이고 단순하지만 출연배우의 재치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부연 설명이 없기 때문에 주드 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왜 ‘bad’인지, 안젤리나 졸리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왜 ‘no’인지는 추측해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또 주드 로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로, 카메론 디아즈가 절대 도전해보고 싶지 않은 직업으로 언급한 ‘파파라치’는 이들이 사생활조차 자유롭지 않은 ‘셀러브리티’로서의 삶에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EBSe에서는 한글자막 없이 방송되기 때문에 영어학습용으로 이용하는 시청자의 호응이 뜨겁다. 유명 스타들의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아내니 자발적 학습효과가 뛰어나다. EBSe 홈페이지(www.ebse.co.kr)에서 다시 보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영문 대본도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