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장길수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 연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 연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최진실씨 인기가 한창 좋을 때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함께하게 됐다. 그때의 최진실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전자제품 광고가 연달아 히트하면서 사랑스러운 새댁 이미지를 강하게 갖고 있었다. 온갖 작품들의 제의가 밀려들었을 텐데 본인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택한 셈이었다. 배우로서 하기 어려운 역할인 건 당연했다. 대사는 한국말이 거의 없이 외국어였고, 그것도 영어도 아닌 스웨덴어였다. 그리고 매우 비극적인, 불행한 여자 이야기였다. 그래도 본인은 ‘난 이런 역할 자신없어’가 아니라 ‘한번 도전해보겠다’라는 생각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당시 석달간 스웨덴에 가서 살면서 스웨덴어를 열심히 배웠고, 한글로 발음을 옮겨 쓴 대사들을 열심히 외워서 잘했다. 결과적으로 연기가 좋았다는 평은 얻지 못했지만 작품에 임하는 동안에는 스스로 한계를 두지 않고 그걸 넘어서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한다.

두 번째 작품이었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도 가벼운 작품이 결코 아니었다. 나름 심각한 캐릭터만 제안해서 내 심정도 좀 그렇긴 했지만, 페미니스트 투사 같은 역할을 본인이 하겠다고 받아들였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그래도 흥행 성적이 좋았지만 <나는 소망한다…>는 흥행이 성공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성 전사적인 모습의 최진실은 관객이 그리 보고 싶어했던 최진실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연기에 대한 혹평도 받았다. ‘이건 미스캐스팅이다’에서부터…. 어쨌든 나는 최진실을 자기가 해보지 않았던 영역에 대해 도전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 도전을 위해 굉장히 열심히 노력했던 배우로 기억한다.

연기에 대한 사랑과 사명의식, 자신의 삶을 연기자로서의 길로 여기며 일하는 배우들이 있다. 그에게서도 그런 태도를 느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이번 일은 더욱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