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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마니아] 옛날 옛적 서극 감독은
주성철 2008-10-17

홍콩영화계의 대부 서극 감독은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지난 13년간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나의 인생, 나의 영화’라는 주제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고 핸드프린팅 행사를 갖기 위해 부산을 찾은 그는 “원래 유명한 감독들만 이런 행사를 하는 것 아니냐”며 무척 기뻐했다. 더불어 그랜드호텔 스카이홀을 꽉 채운 청중에게 예정시각을 훨씬 넘기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무리 시간이 모자라도 객석 질문은 꼭 받아야겠다”는 말에 객석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그러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대신 화장실 갔다 와서 질문을 받겠어요”라며 서둘러 화장실을 다녀왔다. 아마도 서극 감독이 자신의 유년기에 대해 이날처럼 장광설을 늘어놓은 건 처음이지 싶다. 그가 <접변>(1979)을 만들며 홍콩 뉴웨이브의 대표주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서극은 베트남 사이공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당시 좋아했던 영화들은 춤추고 노래하는 인도 발리우드영화들이었고, <고질라> 같은 영화를 보며 곧 도시가 고질라에 의해 점령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먹을 것을 숨기며 지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친구들과 했던 놀이 중 하나는 ‘아저씨 손잡고 극장 들어가기’였다. 성인 동반 영화들인 경우 그냥 들어가는 아저씨 아무나 손잡고 극장에 들어가는 건데, 성공한 아이가 실패해서 극장 밖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영화 내용을 들려주는 건 당시의 큰 기쁨이었다. 그러다 1967년 홍콩으로 이사를 가면서 생활과 환경 모든 게 변했다. 참 답답하고 무료한 사춘기였는데, 하루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내린 적이 있었다. 정말 거짓말처럼 그 영화에 끌렸고 영화를 보는 순간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 작품이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1961)다. 서극이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확실한 결심을 하게 된 영화가 이 <요짐보>다. 그가 평생의 스승이자 영화적 재미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이가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다.

이후 유학을 다녀온 뒤 그는 <TVB> PD로 일하게 된다. 설원의 액션을 찍기 위해 한국에 온 그는 “무술감독이 누구냐?”는 배우의 질문을 받게 됐다. 드라마에도 무술감독이 필요한지 몰랐던 그는 얼떨결에 ‘내가 무술감독’이라고 말하고는 즉석에서 동선을 짜고 합을 짰다. 그렇게 자기만의 액션을 완성하고는 몇날 며칠 밤을 새워 액션장면 편집을 했다. 옆 편집실에서 건너와 함께 밤을 새우면서 그 과정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이가 바로 정소동이었다. 정소동도 서극만큼이나 밤새우며 작업하는 스타일이었다. 이후 서극의 전영공작실이 제작하고 정소동이 연출한 메가히트작 <천녀유혼>(1987)의 인연은 바로 그날 이뤄졌다. 더불어 당시 무술감독이 자신이라 우기며 시작했던 그 고통스런 작업이 자신의 독창적 액션 스타일의 원천이 됐다는 게 서극 감독의 얘기다.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늦깎이’ 배우 유조명을 데려다 완성한 <접변>(1979)의 파격 역시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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