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보다 어딘가에>를 뒤늦게 봤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할 때부터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이제야 보게 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 수연과 동호의 일상에 지난 몇달간의 내 모습이 겹쳤다. 백수인 수연이 “이럴 때일수록 내게 투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부모에게 대들 때 “돈 달라”는 말 한마디 꺼내기도 힘들었던 소심한 내 모습이 떠올랐고, 복학한 동호가 학교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두리번거릴 때는 후배들이 늘어난 낯선 교정을 하릴없이 걷던 생각이 났다. 그렇게 과거를 복구하다 보니 잊고 있던 장면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올해 초, 얼굴이 아릴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던 날의 일이다.
시작은 문자 한통이었다. “오늘 볼까?” 친구 A의 한마디에 독서실에서 명상 중이던 나는 가방을 쌌다. 졸업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취업의 길은 요원했다. 시켜만 준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도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고, 당장 내일까지 끝내야 할 (취업)스터디 숙제는 해도 해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A의 문자는 이 깜깜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좋은 핑곗거리였던 것이다. 약속장소에 앉아 있던 A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이성적이었다. 그녀의 이어지는 말만 아니었다면, 나는 A의 안녕을 굳게 믿었을 것이다. “…나 시험 떨어졌다. 우리 용한 데 점이나 보러 가자.” 그리하여 잠재적 백수 두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우리의 운명을 말해줄 ‘그분’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분’을 알현하기란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진짜 용하다는 분은 향후 6개월의 스케줄이 이미 꽉 차 있는 상황이었고, 또 다른 실력자는 부적을 사고 절을 하라기에 귀찮은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신내림을 받았다던 한분은 창백하고 싸늘한 외모가 무서워 찾지 않기로 했다. 결국 PC방에서 쉬지 않고 두 시간을 검색한 끝에 우리의 바람에 가까운 한 사람을 찾았고, 한 시간 동안 칼바람을 맞으며 그분이 있다는 곳으로 찾아갔다. 개량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타난 그는 단 10분 만에 우리 둘의 2008년을 이렇게 결정지었다. “(나를 보며)자네는 지난해에 하던 일을 계속 하겠구먼.” “(A에게)자네는 눈 좀 낮추고 하향지원해. 그래야 갈 데가 있어.” 그분에게 단돈 3만원씩을 바친 우리는 점집을 나서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둘 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말을 듣기 위해 세 시간을 낭비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2008년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숨 한번 내쉬고 딴짓할 수 있는 약간의 여유였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던 그때의 상황이 갑갑하고 싫었던 건 맞지만 벗어날 만큼의 용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영화 속 수연처럼 트렁크에 짐을 싸서 친구의 옥탑방으로 향하기에 우리는 너무 이성적이었고 겁이 많았다. 나와 A는 그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날 밤 A와 헤어진 이후 한동안 우리는 연락을 하지 않았고, 한번도 그날의 해프닝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취직을 했고, A는 시험을 한번 더 쳤다. 취재와 마감을 반복하는 일상을 살아가던 나는 며칠 전 <여기보다 어딘가에>를 봤고, 거짓말처럼 그날 A로부터 전화가 왔다. A의 안부를 물으며 나는 다시 한번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