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참으로 괄시받는 존재다. 영화는 적어도 10분 이상은 보고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지만 광고는 그냥 한눈에 ‘될 놈’, ‘안 될 놈’ 판가름이 난다. 첫 장면, 첫 번째 카피가 무엇인가로 15초를 온전히 다 볼 것인지 판단한다. 심지어 눈으로는 보아도, 기억에 남을지는 또 모를 일이다. 그래서 광고는 눈길 한번 받아보려고 애쓰는 짝사랑에 빠진 이 같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 주저리주저리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면 누가 가만히 앉아 그 사연을 들어주겠는가? 게다가 ‘작업’을 걸려는 의도가 빤히 보이는 사람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광고의 기본은 ‘단순함’(simplify)이다. 극단의 단순화. 그것이 카피든 비주얼이든 마찬가지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엑기스’만 남기고 다 없애는 것. 누군가가 창의성의 본질은 단순함이라고 했는데,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세련되면서도 좀더 정확하게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글 잘쓰는 법>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정민 교수는, 글쓰기에서 부사와 형용사를 30%만 줄이면 글의 전달력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카피라이터의 기본 트레이닝은 문장에서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글자의 수를 줄이는 것은 아니다. 글자 수가 줄어들고, 그림 수도 줄어들었지만, 보는 이의 마음은 더 흔들리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광고다. 축약이 아니라 ‘함축의 기술’이 필요하다.
광고 품목 중에서 두 번째로 비싼 제품(첫 번째는 아파트)인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1600cc의 신차가 출시됐다. 2000cc 이상이 주는 고급스런 이미지를 갖고 싶어한다. 어떻게 표현할까? “이 차는 1600cc지만 2000cc급 이상에서나 쓰이는 고급 사양을 갖추었다”고 차량 내부와 외부를 자세히 설명하며 비출 것인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때 ‘함축의 기술’이 필요하다. 1600cc의 신차는 한밤에 먹이를 발견한 야생동물처럼 고급 중형세단 뒤로 슬그머니 다가와 그 차를 꿀꺽 삼켜버린다. 어떤 고급 기능을 갖추었는지 보여주거나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 신차는 ‘럭셔리 1600cc’라는 새로운 포지셔닝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스포츠카가 출시됐다. 그런데 광고는 딱 한마디만 한다. “인생은 짧다.” 이 차가 얼마나 멋진지는 차를 폼나게 표현한 화면으로 충분했다. ‘인·생·은·짧·다’라는 다섯 글자는 ‘인생,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결심, 그리고 선글라스 낀 채 오픈카로 질주하는 자신의 모습까지 떠올리게 만든다.
무조건 줄이는 것이 함축의 기술은 아니다. 소비자(타깃)에게 필요한 것이 개별적인 제품 특징이 아니라는 확신이 전제돼야 하며 보여주거나 말하는 것이 줄어든 만큼 소비자 스스로 더 많은 상상을 하게 해서 그것이 더 긍정적인 브랜드 자산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함축은 소비자가 광고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런 광고를 ‘멋진 광고’라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