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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한] 한국도 한 영화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문석 사진 김진희 2008-10-08

파라마운트픽처스 수석 부사장 지니 한

미국 파라마운트픽처스의 지니 한 수석 부사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지난 9월26일 카이스트 서울 캠퍼스에서 열린 2008 카이스트 정보미디어 글로벌 포럼에 참석해서 ‘디지털 시대의 영화산업’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7월에는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2주 동안 여름학기 강의를 하기도 했던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USC에서 비즈니스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컨설팅 업체 KMPG컨설팅에서 드림웍스와 워너브러더스 등 엔터테인먼트 업체를 고객으로 둔 채 일하다 드림웍스에 스카우트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파라마운트픽처스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나. =배급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개봉일을 잡는 것부터 배급방식이라든가 전략 같은 것을 수립하고 마케팅 방향 또한 설정한다. 또 아시아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영화를 비롯한 아시아영화를 미국에 소개하는 일도 돕고 있다.

-정보미디어 글로벌 포럼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나. =현재 미국이 금융위기를 겪고 있지만, 엔터테인먼트산업과 영화산업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9·11 사태 때나 경제가 침체 국면일 때도 영화산업은 오히려 성장세를 보여왔다. 사람들이 돈이 많이 드는 다른 레저 분야 대신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관을 찾기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에서도 비슷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 말은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본다. 요즘 한국영화산업이 위기라고 하면서 투자나 제작이 위축돼 있는데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다시 뛰면 위기는 쉽게 극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영화산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나름의 연구가 있었던 것 같다. =특별히 연구를 했다기보다는 영화진흥위원회나 여러 곳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해봤다. 내 생각에 현재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문제는 투명하지 않은 구조다. 할리우드 메이저 중 일부도 한국영화에 투자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지만, 투자된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는 것으로 안다. 과거에 비해 많이 투명해졌다고는 하나 할리우드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아직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또 인적자원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인적자원인데 한국영화계의 인적자원 관리는 아직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감독에 대한 지나친 의존 또한 큰 문제점이다. 할리우드에서는 각 분야를 맡은 스탭들이 저마다 자기 일을 처리하는 분업화가 잘돼 있는데 한국은 감독이 기획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는 등 모든 일에 간여한다.

-한국영화계가 어떤 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국영화는 아주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왔다. 아주 기발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또 인력 개개인의 능력 또한 우수하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할리우드는 한 작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 10년을 주기로 판단한다. 그 영화가 10년 동안 다양한 윈도를 통해 보여지는 것을 미리 계산한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할리우드영화는 북미 개봉 매출만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한다. 해외시장에서 판매하고, DVD나 TV 등에 판매하면서 비로소 수익이 발생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북미 개봉으로는 제작비를 벌고, 해외 개봉으로는 마케팅 비용을 뽑고, DVD·TV를 통해 수익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캐릭터 상품 등 머천다이징 사업이다. 할리우드영화가 그렇게 10년 정도 꾸준하게 수익을 만들어주는 데 비해 한국은 개봉 첫주, 둘쨋주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게다가 한때 좋았던 일본시장이 무너졌고 DVD시장이 죽어가는 마당이다. 지난해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가 10편 남짓하다는데 극장에서 대부분 매출을 올리는 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인다. 한국도 한 영화의 수명을 좀더 늘리기 위한 다양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이번 강연 주제가 ‘디지털 시대의 영화산업’이었는데 할리우드에서는 디지털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나. =한국은 IPTV가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지만, 알다시피 미국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할리우드는 기존의 사업을 유지하는 가운데 VOD 서비스라든가 네트워크를 통한 다운로드 서비스 등을 고민하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 아직은 아무도 디지털 시대의 모델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몇개의 힌트는 있다. 이전까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기만 하던 관객은 블로그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UCC 같은 다양한 콘텐츠 또한 시류를 타고 있다. 또 다양한 매체가 융합되고 있다. 결국 네트워크를 통해 이들을 어떻게 엮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

-한국인으로서, 아시아인으로서, 게다가 여성으로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간부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본다. 어떤 비결이 있었나. =일단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비결? 글쎄, 내 모토는 ‘한 발짝 앞으로’(One Step Ahead)다.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보다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의지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카이스트에서 한국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도 했는데, 교수로서의 생활은 어땠는지. =2주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3시간씩 강의했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웃음) 하지만 교수가 되려 한 적도 있었고, 한국 학생들의 열의 또한 대단해서 아주 즐거웠고 보람이 있었다. 앞으로도 시간이 되는 한 한국에서 강의할 예정이다. 나 또한 어떻게든 한국영화가 잘되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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