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시리즈의 원작자이자 감독인 도미노 요시유키는 일본 로봇애니메이션의 산증인이다. 그는 1979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리얼리즘을 추구한 <기동전사 건담>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후 이 작품이 수많은 시리즈를 낳으면서 ‘건담 월드’의 아버지가 되었다. 대한민국 콘텐츠페어 참석차 방한한 도미노 요시유키를 만났다. 그는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생 경험이 필요하며, 노련한 애니메이터의 조건으로 애니메이션 자체를 좋아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메시지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
-<건담>은 이전까지의 로봇애니메이션과 다른 사실적인 로봇물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건담>을 연출하게 된 과정, 그리고 작품에서 내세우고 싶었던 의도는. =단순히 SF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작품의 의도라면 ‘퍼스트 건담’을 등장시켜 ‘인류의 혁신’을 보여주고자 했었다. 이후 <건담>의 그런 컨셉은 세월이 흐르면서 시리즈로 발전했는데, 지금의 <건담> 애니메이션들이 가진 주제에 관해서는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건담>의 배경을 전쟁으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전쟁물을 만들기 위해 <건담>을 만든 게 아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것은 완구회사의 요구 때문이다. 매주 새로운 악당 모빌슈트(<건담> 세계에 나오는 로봇 병기의 명칭)를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은 국가적 규모의 전쟁밖에 없기 때문에 전쟁을 택한 것이지 애초에 전쟁물로서 의도한 것은 아니다.
-완구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는데, 작품을 제작할 때 완구회사가 많이 관여하는 편인가. =완구회사는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작품의 스폰서로 참여한다. 스폰서가 만드는 완구를 홍보해야 하는 터라 전쟁을 통해 매회 모빌슈트를 등장시키는 것은 제작할 때 꼭 지켜야 할 불문율이다. 그런데 <건담>은 방영 당시 10살 이하의 아이들이 건담 완구를 사주지 않았다. 그래서 투자가 중단되기도 했다. 처음 <건담>의 스폰서는 아이들 대상의 완구만 만들던 곳이었는데 10살 이상을 타깃으로 한 완구는 만들어내지 못했고, 결국 반다이가 <건담> 사업을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은 저작권 관리가 엄격한 것으로 안다. 당신이 원작자인데 <건담>에 관한 권리가 없다고 들었다. =내가 <건담>의 원작자이긴 하지만 권리자는 아니다. 별도의 저작권 관리 회사가 <건담> 시리즈의 제작, 머천다이징 등 모든 부분을 관리한다. 따라서 원작자로서 별도로 얻는 수입은 없다. 이러한 식으로 회사가 저작권 관리를 하는 경우는 세계에서 일본이 유일하다.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 <트랜스포머>에 대해 언급했었다. <트랜스포머>를 필두로 할리우드에서 일본 로봇애니메이션을 소재로 한 실사영화들이 제작되는데, 그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만약 <건담>을 실사화한다면 어떻겠는가. =<트랜스포머>를 보지 않았다. 사실 원작과 실사 리메이크의 비교에 관해서는 내가 말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내가 <건담>의 실사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최근 2∼3년 사이 애니메이션과 실사 의 구분이 모호해졌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에 굳이 실사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흥미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직접 실사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과연 잘 만들 수 있을지, 또 분명 원작과 비교될 텐데, 하는 걱정들이 앞서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분명한 건 영상산업 종사자로서 굳이 실사영화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한국에도 팬이 상당히 많다.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이에게 조언한다면. =애니메이션을 절대 좋아해서는 안 된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면 그 틀 안에 갇혀버리고 만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에 다른 메시지를 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싫어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야 다양한 기법들을 애니메이션에 동원할 수 있다. 자세히 말하면 서른 살 이전까지는 다양한 인생경험을 하면서 다른 이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찾고, 그것을 애니메이션에든, 영화에든 투영할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 또 그런 사람들이 업계에 많아져야 하고. 단지 애니메이션만 집중적으로 파고든다면 오타쿠가 될 뿐이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좋아해야 한다.